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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rich Sjarief_Realrich Architecture Workshop

리얼리치 샤리프는 2011년 리얼리치 아키텍처 워크숍을 설립하여 지역성과 수공예를 강조하는 건축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인도네시아 반둥 공과대학교를 졸업하고,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대학교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 포스터 앤드 파트너스와 싱가포르 디피아키텍츠에서 실무 경력을 쌓았다. 2017년 인도네시아 건축가협회 자카르타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직접 설립한 오마도서관을 통해 작가와 교육자로서 건축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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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속에서의 인도네시아 현대 건축

박 : 우리는 세계 건축의 흐름이 여전히 유럽이나 미국 중심으로 흐르고 있지만 문화의 변화는 점점 아시아로 쏠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는 건축에 관여나 간섭할 문화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건축의 문화는 서구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고 우리의 의지와 무관한 흐름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건축은 아시아에서 (일본, 중국 또는 싱가포르) 쌓아온 역사, 문화적 토대를 바탕으로 그 관심의 변화가 시작됨을 느낍니다. 이 때 우리는 아시아 건축의 상황을 점검하고 앞으로 변화되는 환경을 이끌어 나갈 건축가들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도 체감하고 있습니다. 지금 인도네시아 건축의 흐름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십시오.

리얼리치 :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아름다운 수공예와 장인정신’과 같이 풍부한 전통에서 오는 막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스튜디오와 같은 젊은 건축가들에게는 공공 프로젝트를 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많은 젊은 건축가들은 작은 개인 프로젝트를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상황과 더불어, 인도네시아의 현대 건축의 트렌드에는 이를 주도하는 헤게모니가 존재하며, 문제는 우리가 이것에 어떻게 적응하며 또 얼마나 대담해질지에 대해서 예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목해야 할 몇 가지 사건 중 하나로 1993년 인도네시아의 젊은 건축가 협회 (AMI)가 주최한 Cross Flow Exhibition 전시가 그 운동의 시작이며 인도네시아 건축의 교착상태를 타개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 운동을 보고 역사학자 Abidin Kusno는 자본주의의 흐름에 일련의 이념으로 대응하기 위해 '모더니스트 세대의 뉴에이지'라는 제목의 건축 저서에서 이 현상을 논하기도 했습니다. AMI는 또한 인도네시아 건축이 정체성을 잃었음에 대해 통감하고 있는데, 이는 건축계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이 진부하게 쓰여지는 기득권자들의 언어를 따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두 가지 상황이 수반되었는데 첫째, 기존의 전형적인 많은 공공 건축물에 전통적인 자바 양식의 건축이 적용되고 있다는 점, 두번째로는 해외에서 똑같이 베껴온 지중해 양식의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AMI의 운동 내부적으로도 있었는데, AMI의 핵심멤버 중 한 명이자 URBANE 건축사무소의 수장인 Tardiyana에 따르면 "디자인 탐구는 AMI의 이전 세대가 남긴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AMI는 탈정치화의 시대에 활동하며 민간부문에서 큰 역할을 해왔지만, 우리 또한 외부 상황과 맞물려 정보의 흐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1990년대 초, 책과 잡지들이 건축계에 범람하듯 쏟아져 나왔고, 당시의 글로벌과 로컬 사이에서 상충하는 고민은 책이나 잡지에 의해 잠식되어 단순한 시각적 문제로 전락해버렸다. 이는 AMI 회원들의 활동 반경이 보다 안정된 도시 중산층에게 치우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AMI는 이러한 오명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이와 같은 노력은 아직까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기본적으로 AMI는 정체성에 대한 충돌의 시대이지만 나는 정체성만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지금의 상황 속에서 더욱 비판적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 후 AMI는 전시, 책, 그리고 새로운 내러티브의 흐름 속에서 지금까지 이어져온 불합리에 대항하는데, 그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전통주의자들은 AMI 또한 정체성에 반하는 행태를 취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로 인해 포스트 모더니즘과 함께 전통적인 것과 새로운 것의 필요성 그 사이에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문제를 기반으로 무언가를 해결하고 있는가? 아니면 오히려 우리가 이 시대에 나타나고 있는 정체성과의 충돌로 야기되는 문제들에 기여를 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들 말입니다.

박 : 기존 문화와 새로운 문화 사이의 갈등이나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그런 문화적 차이와 각 세대간 차이에 대한 여러 논의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고 보는데, 당신이 생각하는 건축에서의 고민들을 현실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풀어 나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리얼리치 : 예를들어 ‘구하 프로젝트’는 건축에 대한 나의 이해를 몇 단계나 발전시켰습니다. ‘구하’는 재료와 공간의 시적 표현입니다. 공간은 작지만 일련의 상상력이 중앙 뜰에서 절정에 이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각 방의 세부적인 부분을 보면 그것들은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고, 개방적인 동시에 가변적이며, 평면상의 유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요소들 중 몇몇은 우리가 모종의 가능성을 탐색하며 진행했던 프로젝트들에서 나온 것이기도 합니다. 5년 전의 스터디는 모듈화, 최적의 언어, 4년 전 스터디는 텍토닉적 문법(형태적 패턴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며, 3년 전 스터디는 목재와 대나무 같은 자연 재료를 콘크리트, 강철, 유리, 벽돌, 석재와 결합하는 파격적인 시도를 했습니다. 2년 전에는 거시적 공간을 통해 또 다른 일련의 작은 공간들을 만들어내는 리좀적 공간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1년 전의 것은 방법론에 관한 것이었는데, 따라서 소프트웨어적인 것이자 디자인 과정에서의 사고방식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 지금 이야기한 과정 속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원칙이 정리되어 있을 것 같은데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해주십시요.

리얼리치 : 나는 건축을 만드는 데 세 가지 접근방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는 합리적 건축을 만드는 방식이며, 다른 하나는 과거에 기반한 전통주의적 접근입니다. 세 번째는 나에게 가장 잘 맞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색적인 방법입니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영감의 원천이 되어 건축을 아름답게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를 어떻게 조화롭게 만들어 나가느냐인데 각 영역별 한계에 도전하는 움직임, 역사적 관점으로 보면 일종의 시적 사상을 불어넣기 위해 많은 것들을 간략하게 표현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디자인적 사고를 잠시 멈추고 그것을 확실하게 소화해내는 것입니다. 역사를 바탕으로 하는 문화는 고착화될 필요가 없으며, 현대 건축은 항상 질문에 대한 답을 합니다. 또한 보다 나은 건축을 위해 각각의 컨텍스트, 특정 영역, 건축주에게 정확한 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 방금 말씀하신 내용을 실제 프로젝트를 하면서 전개 되었던 것들이 있나요?

리얼리치 : 있습니다. ‘알파 오메가 학교’를 설계함으로써 ‘구하 프로젝트’를 실현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생겼는데, 디자인에는 언제나 한계가 없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알파 오메가 학교’에서의 재료를 보면 대나무와 철골 구조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두 재료의 조합에는 각각 이유가 있는데 안전성과 편안함, 지속 가능성 등 최적의 조건을 갖추는 가장 합리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영속성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한편으로 이는 문화적인 것이며, 인간의 관계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시 먼지로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나는 산림에 비유하는 걸 좋아하는데 건강한 숲을 만들기 위해서 작은 나무가 잘 자라도록 20~30년 된 나무를 자른다는 나무의 철학입니다. 무절제는 인간의 간결함과 살아있는 자연의 갈망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박 : 한국의 현대 건축은 1920~30년대 생의 1세대 건축가를 시작으로 40~50년대에 태어난 2세대 건축가를 거쳐 지금은 70~80년대 생의 3세대 건축가의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각 세대에 따라 시대적 상황에 맞춰 건축을 대하는 방법들은 당시의 가치관이 녹아 서로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젊은 건축가들이 관심 가지는 문제점은 무엇이고 인도네시아 건축계에서는 어떤 성격의 활동들이 있습니까?

리얼리치 : 나는 앞서 말한 대로 정체성에 대해 여전히 문제라고 봅니다. 인도네시아의 많은 젊은 건축가들이 장식을 통해 개성을 얻으려고 하는데, 나는 그것이 낮은 차원의 얕은 생각에서 깊은 사색적 고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1990년대 '인도네시아의 젊은 건축가 포럼'에서 반발이 크게 일었지만, 나의 스승이며 롤 모델 중 한 명이었던 Y.B.Mangunwijaya는 포럼(AMI가 주최한 포럼)이 보다 총체적인 설계 없이 형태만 가지고 놀 뿐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사회주택의 필요성과 같은 사회적 이슈는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러한 이슈를 이야기 하는 인도네시아 건축계에는 선배 건축가 Andra Matin이 주도하는 AMI포럼과 전통적인 사고방식으로 대표되는 Josef Prijotomo가 이끄는 또 다른 포럼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나는 그 두 영역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때때로 소외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오히려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아서 좋을 때도 있습니다. 오히려 혼자서 좀 더 생각하고 나아나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박: 두 포럼이 경쟁적으로 내용을 만들어 내는 구조는 이로울 듯 합니다. 건축은 시장의 규모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70년대 이후 대규모 주택 건설 붐이 일면서 양적 팽창과 함께 건축 시장의 규모도 함께 커진 경험이 있습니다. 물론 규모가 커졌다고 질적인 부분이 보장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상관관계는 있다고 봅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이런 양적인 변화를 가져온 시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리얼리치 : 인도네시아는 지금도 개발의 가속화를 겪고 있습니다. 정부 기관 중 공공주택사업부(The Ministry of Public Works and Housing)에서는 2015년 1145만 9875호의 주택을 지으며 인도네시아 주택건설의 누적 통계치를 기록했습니다. 이 수치는 2018년 정부의 한해 100만호 조달 계획으로 몇 가지 해결책이 등장했는데, 특히 주택 소유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공공 주택과 은행 규제를 풀었고, 이는 주택 개발자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데이터는 건설과 건축 산업이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2017년 건축법 제6호 제정 이후 공인건축가가 늘고 있고 인도네시아 건축가협회(IAI)의 2018년 회원 수가 1만8000여 명으로 7000여 명이 추가적으로 인증을 받았습니다. 반면 인증된 건설업종 숙련인력은 현재 활동 중인 인력 810만 명 중 72만 명에 이르는데, 이러한 증가세는 자바 섬, 특히 자카르타와 주변 위성도시에 집중되어 있고 수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속화가 진행됨에도 인도네시아 인구 2억 6,400만명 중 1000만 명에 육박하는 자카르타의 인구수 대비 건축 전문 인력의 수는 부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RIBA에서는 총 인구 6,600만 명 대비 인증된 건축가의 수가 총 5만 4천 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건축가의 비율도 중요하지만, 건축가의 수가 꾸준히 증가한다는 것은 지역사회와 건축가 사이의 건전한 사업 관계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어쩌면 인도네시아에는 자국을 대표할 수 있는 건축가는 부족하며, 이들은 소수의 건축가들로부터 모종의 압력을 받고 있기에 늘어나지 않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정체성에 관련한 논의는 짧게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지만 한편 이것들이 인도네시아 건축계의 자존심에만 그칠 경우,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실패하는 모습을 보였고 나 역시 이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 것 같아 반성하게 됩니다.

박 : 건축은 혼자만으로 설 수 없고 그 나라가 쌓아온 문화적 토양과 긴밀하게 엮여 있어 짧은 시간에 그 성격을 만들어 내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건축 자체는 문화와 건물의 결합이라고 보는 관점에서 본다면 문화적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건축에서는 어떤 시도들이 일어 나고 있다고 보십니까?

리얼리치 : 우리의 문화적 자산에 대해 정의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진 문화적 풍요로움에 관련하여, 어떻게 하면 많은 것들을 다룰 수 있는 건축적 언어와 문법을 정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들 말입니다. 나는 예를 들어 우리의 DNA를 찾기 위해 텍토닉, 수공예, 방법론을 연구하며 이해하려 했고, 이를 프로젝트에도 적용해보았습니다. 나는 우리가 가진 문화적 가치는 분명 강력하지만 지금의 결과는 그에 못 미침을 알고 있습니다. 내어줌(surrender)의 정신을 가르친 Subud와 Sumarah(일종의 종교적, 영적 철학, 운동)의 Paguyuban(커뮤니티)처럼 무위, 무소유는 세상에 대한 자기반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그 원리가 바로 Rahayu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 고유의 정착지에 대한 문화 철학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예컨대 Rahayu의 정신을 함양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나, 타인들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박 :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고 세계화가 일어나면서 90년대부터 유학을 많이 간 건축가들이 활동을 많이 하고 있고, 직간접적으로 그것이 서구의 건축과 접점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인도네시아에서 일반적인지 모르겠지만 다양한 나라에서 공부하고 일을 했습니다. 호주, 런던, 싱가포르에서의 경험이 당신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리얼리치 : 나는 건축 기술과 장인정신을 통합하는데 있어서 어떻게 하면 비판적인 동시에 창의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왔고 스스로를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현재의 인도네시아의 건축 흐름에 도전하거나 혹은 디자인의 문제를 정의하거나 그 문제에서 출발하는 것에 있어서 맥락적인 부분들을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Foster&Partners에서의 경험은 세계 최고의 글로벌 대학들과 비교하여, 인도네시아의 대학을 졸업한 젊은 건축가들이 역량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 등 글로벌 대학과 인도네시아 건축대학, 특히 ITB를 졸업한 젊은 건축가들의 질적 차이는 비판적 사고력과 논쟁적 능력에 있다고 느낍니다. 인도네시아의 학부 과정은 건축의 기술적인 측면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반면, Norman Foster의 스튜디오와 같은 곳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무언가를 생산 해내기 위한 방법과 이론에 대한 건축가의 비판적 관점입니다. 인도네시아의 교육 시스템은 학생들을 강제하는 경향이 있지만, 적어도 전문 분야에서는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미래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Norman Foster의 스튜디오에서 일한 후 거의 5년 동안 이런 느낌을 지우지 못했고, 그러한 경험은 나로 하여금 우리의 전통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고 이에 대해 이성적으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나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나의 Rahayu는 과거의 협동적인 과정(collaborative construction process)에서 2017년에 건축학과 학생들을 위한 무료 학교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박 : 그리고 당신은 태어난 곳과 배운 곳 그리고 지금 일하는 곳이 각각 다릅니다. 인도네시아에서의 지리적 차이점에서 오는 각각의 영향을 어떻게 받았다고 생각합니까?

리얼리치 : 나는 무역의 도시인 ‘수라바야’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의 짧은 기간을 문화의 도시 ‘발리’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수도인 ‘자카르타’로 이사를 갔는데, 당신도 알다시피 도시가 파편화되어 엄청난 교통 체증이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자바의 ‘파리’라고도 불리는 네덜란드의 식민 도시였던 ‘반둥’에서도 공부 하면서 인도네시아의 중요한 4개의 지역을 모두 경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인도네시아가 얼마나 방대한지 보여주는 예이기도 합니다. 우리 프로젝트 중 몇 가지는 나의 배경과 관련이 있는데, 그것은 서부 자바 수메당 출신의 장인들과 시공한 것으로 이들은 전통 수공예품을 잘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장인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자바의 여러 부족과 협업의 결과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나무와 대나무는 서쪽에서, 건축 구조는 동쪽에서, 마감은 자바 중앙에서 왔으며 이는 문화, 건축 기술, 그리고 지역 재료의 통합적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종합적으로 나는 식민지 건축과 풍부한 자바의 전통이 어우러진 부유한 문화 도시 ‘수라바야’에서 받은 영향이 컸습니다. 우리 가족은 보르네오 출신의 건축가 집안이며, 아버지는 내게 건축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의 기초를 전수해준 고마운 토목 기사이기도 합니다. 1998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위기로 아버지의 사업이 중단되자 ‘자카르타’로 건너가 ‘반둥’에서 공부했고, 싱가포르, 런던에서도 일했습니다. 나는 포스터 앤 파트너스 런던의 노먼 포스터 경 밑에서 일했고 그것은 나 자신의 지역적인 전통을 잃지 않고 건축을 하는 것과 같은 세계적인 문제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넓혀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는 건축의 통합적 접근방식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반영하고 재구성하기 위해 그곳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호주에서 석사 과정을 졸업했는데, 현지의 문화 안에서 틀을 만들어나가고 일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놀라운 경험의 연속이었습니다.

박 : 어렸을 적 기억과 지역에 대한 경험, 그리고 다양한 문화적 습득이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이후 스튜디오는 어떤 길을 걸어갔나요?

리얼리치 : 이후 나는 인도네시아 독립 이래로 60년 간 3대째 내려온 우리 건축 집안의 오랜 역사와 함께 나를 둘러싼 문화를 재정립하였는데 그 당시에는 그러한 작업에 적절한 이름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감독자들과 노동자들의 관계는 몇몇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친밀하고 개인적이었고 이러한 관행은 인도네시아의 건축에 대한 신뢰, 품질, 그리고 진정한 디자인 혁신으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그 후 우리 스튜디오의 작업은 공예가, 디자이너, 사람, 건물 전체의 조화로운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스튜디오 작업, 의뢰인 및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등으로 인해 이런 나의 믿음이 발전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나는 전통주의자와 합리주의자가 되는 두 가지 흐름에서의 경험이 오히려 나를 그 두 흐름으로부터의 분리가 아닌 양쪽 세계에 대한 통합의 역할을 하게 하며, 우리의 작업은 나의 뿌리를 바탕으로 100% 글로벌 할 수도 있고 100% 지역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