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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상자 그리고 꽉 찬 밀도

서 : 소장님이 예전에 출강하던 학교에서 수업하는 사진을 보여주셨는데, 큰 모형을 학생들이 모두 머리에 쓰고 공간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소장님의 관심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번 소장님이 ‘형태에 관심없다’는 발언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었는데(웃음) 저는 이해가 됐던 것이 외부에서 보이는 매스의 세밀한 조절, 비례에 대한 집착 그런 것들에 대한 관심이 적다고 보여져요. 그렇다면 소장님의 주 관심은 무엇인가 했을 때 저는 볼륨이라 생각되요. 볼륨은 공간의 네거티브 스페이스라면 매스는 밖에서 보는 덩어리인 셈이죠. 특히 최근에 소장님은 외부형태보다 내부공간을 먼저 상상하는 것으로 보여요. 예전의 작업들의 평면도를 보면 어느 정도 완결적 질서를 가진 상태를 추구했다고 하면 최근 도면들은, 특히 양평 신화리 주택은 규칙이 있나 싶을 정도로 약간 어수선해보이고. 일부러 그러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박 : 기하학적인 규칙이라가 보다, 움직이는 판들을 잘 작동하고자 하기 위해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치수들이 정해졌어요. 긴 판들도 있고 짧은 판도 있고 힌지의 위치도 서로 제 각각이고, 이 판들은 모두 제각각 따로 놀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어느 순간 이 판들이 딱 맞아떨어져요. 이것들의 구조적인 규칙이나 비례, 형태를 형식에 맞춰서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형식에서 보다 자유롭게 가고자 합니다. 물론 규칙도 있긴 하지만.

서 : 둘 다 하면 안되나요?

박 :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 경직 되고 어느 순간 답답하다고 느껴졌어요.

서 : 몇 년전 이탈리아 건축가와 같이 소장님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가 생각나네요. 우연히 두 건축가의 평면에 박스가 여러 개 놓인 비슷한 유형이 있었는데, 이탈리아 건축가는 기하학의 연장선들이 또 다른 완결성을 가지는 반면, 소장님의 평면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저는 그때 소장님의 중요했던 키워드는 프로그램, 내부공간, 분위기, 감각, 지금은 공예, 공유로 이어진 것 같아요.

박 : 다 나왔네요. (웃음)

서 : 신화리 주택의 실들이 생각보다 작았던데 반해 장치들이 꽤 많았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작은 스케일에서 뭐가 너무 많다고 해야 하나? 부분은 잘 컨트롤 되고 있는 반면 전체를 다루는 데 약간 놓치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전체를 볼 때 너무 부분들이 너무 산발적인건 아닌가 생각도 들고요.

박 : 클라이언트의 성향에 따라, 당시 사무실에서 프로젝트 담당이 누구였는지에 따라 상황이 조금씩 다르지만, 여러 개입들에 의해 그런 것 같아요. 건축주가 타일이며 조명이며 직접 모두 골랐어요. 우리는 결정할 수 있는 틀만 만들어주고, 기능이나 영역에 대한 구획도 모두 맡겼어요. 축구를 예를 들면 저희는 축구장의 크기를 정하고 경기를 위한 선수 인원과 경기의 룰을 만들면 사용자는 그 틀 안에서 다양한 경기(사건)를 하는 것과 비슷한 내용이라고 봐요. 당연히 크기와 룰이 바뀌면 아주 다른 게임이 가능하겠죠. 이런 다양한 조건에 의해서 건물의 성향이 다르게 나와요. 홍은동에 진행중인 프로젝트의 경우도 너무 중구난방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서 : 신화리 주택이나 여러 작업들을 보면 Smallness에 대한 생각이 납니다. 공간들이 생각보다 작은데 요소 또한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공예에 의해 밀도가 높아 보이는 이유도 있겠지만 공간을 크게 구획하기 보다는 아기자기한 크기를 선호하는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정확히 어떤 요구사항이 있었는지 모르기에 이게 속단할 수는 없지만 마찬가지로 작업하신 다가구 주택 프로젝트들을 봐도 그러한 성향들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공용공간의 이야기도 그렇고, 이러한 것이 혹시 일본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보니 영향을 받은 것도 있는 건가요?

박 : 의식해서 그것들을 접근하거나 연결시켜서 한 것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스케일에 대한 것으로 연결 지을 수 있을까 이것도 잘은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신화리 같은 경우 특히나 그런 편이었지만, 판포리 집 같은 경우는 완전히 미국집 같거든요. 엄청 기하학적이고 딱딱하거든요. 평면을 보면 오밀조밀함과는 거리가 멀고 상대적으로 큼직하게 했던 집이에요. 결과적으로 보면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한 것 같아요. 그럼에도 신화리 주택에서 스케일에 관해서 생각해왔던 것은 아이들이 몸이 작기 때문에 몸이 작았을 때 경험했던 그 작은 스케일이 몸이 커지면서 그 스케일의 변화가 무척이나 클 것이라 생각해요. 저는 그 차이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서 : 일본어를 할 줄 알다 보니 일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가요?

박 : 그렇죠, 아무래도 언어가 되면 좀 더 관심이 생기게 되죠.

서 : 일본 건축가들도 인터뷰를 많이 했잖아요.

박 : 일본 건축가들도 신기해할 정도로(웃음)

서 : 상대적으로 너무 많은 얘기를 듣다 보면 이 생각도 들고 저 생각도 들고, 저 사람 말도 맞는 것 같고, 이 사람 의견도 공감되고, 그러다 보면 자기 작업을 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생각되요. 한국 건축가뿐만 아니라 일본 건축가들과도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그것이 본인의 작업이나 사고에 영향을 주고 있나요?

박 : 전 인터뷰를 시작했던 이유 중 하나가 선배 건축가들이 먼저 간 길들에 이런 저런 조언이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그리고 같이 공유를 하면 좋겠다라는 취지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그 분들이 ‘니가 뭔데’ 이럴 거 아니에요. 처음부터 선배님들을 하기에는 준비가 안되어있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주변에 있는 동료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에요. 토탈 갤러리에서 했던 전시에서도 일본어를 할 줄 알다 보니 통역 비슷한 역할을 하기도 하면서, 일본의 다섯 팀하고도 친하게 됐고요. 도움이 된 것은 다양한 시각으로 건축을 접근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공용부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일본 건축가들을 인터뷰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 같기도 해요. 일본의 경우 지진 이라던지 원전 이라던지 이런 큰 사건 때문에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경험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사회적으로도 건축계에서도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게 아닌 같이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었고, 이를 드러내거나 표현할 수 있는 건축적 실험들이 쭉 있어왔어요. 이제는 한국도 이와 완전히 동떨어진 상황이 아니겠다. 우리도 마찬가지이겠다 싶었어요. 또 포르투갈의 건축가 부부를 인터뷰하면서 잡지, 교육과 관련된 부분들을 어떻게 자신들의 작업에 연결시키고 무엇을 만들어나가고 있는지를 듣고 느낀 바가 많이 있었죠. 이전에는 관심이 없었던 영역들을 알게 되면서 제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죠.

(프로젝트 참조)

센서빌리티 앤 센서빌리티 Sensibility and sensibility

서 : 소장님하고 얘기를 하다 보면 무척 여성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작업들도 그렇고.

박 : 서호동 주택을 보고 공간을 여성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전 그때 이야기가 처음이고 서소장님이 두 번째로. (웃음) 신화리 주택을 보면 여성적인가? 아기자기하면 여성적인가? 스케일이 작아서?

서 : 아기자기하고 그런 것도 있지만 빛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도 그런 것 같아요. 빛을 다루는 방식에서, 르 코르뷔지에는 빛을 건축의 장엄함을 만드는 수단으로 이야기 하지만 소장님의 빛은 장엄함 보다는 감성적이고 구석에 들어와 텍스쳐를 비춰주는 촉지적 수단으로 이야기하거든요.

박 : 맞아요. 우리가 예전에 정말 마음에 들어 했던 빛이 하나 있어요. ‘깊은 빛’이에요. 움직임이 거의 없이 저 너머에서 천천히 스며들어 오는, 움직임이 없고 강도가 약한. 북쪽에 만들었던 고측 창에서 스며나오는 은은한 빛, 그 빛이 우리가 생각하는 강렬한 빛이에요. 처음에는 스펙터클하고 그런 빛이었다면.

서 : 그런 빛을 만들려다 보니 그런 건지 인테리어 작업이 굉장히 많아 보여요. 예를 들어 빛의 광원이 안보이게 하기 위해 벽을 의도적을 둔탁하게 만들거나 원하는 어떤 장면, 순간을 만들려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석고보드 작업도 많아지는 것 같은데 그게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정말 자연스러운 빛은 누워있는데 어느 순간 들어오는 빛일 수도 있는 것처럼.

박 : 만들어낸 빛이긴 하죠. 상황에 따라서 다르긴 해요. 이번에는 이런 빛을 해야지 하는 건 아니고, 어떤 장소에서 채집했던 빛. 무진도원에서 나왔던 집의 경우, 엄청나게 많은 귤밭 안에 있는 집인데, 해가 질 무렵에 산란돼서 들어오는 그 빛이 되게 포근한 빛으로 느껴졌어요. 이게 제주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빛의 질감이구나라고 느끼고, 그걸 어떻게든 내부로 끌고 들어올까 하다 보니 만들어진 것이었고요. 그런 반면에 의정부에 했던 주택 프로젝트 같은 경우 그건 완전 다른 빛이에요. 위에 있는 천창과 돔, 그 내부에 쏟아지는 빛이 내부를 감싸거든요. 그건 무진도원에서 얘기했던 빛과는 온전히 다른 종류의 빛이에요. 그건 건축주의 성향에 따라서 또 달라요. 빛에 대한 관심도는 어느 프로젝트에도 다 들어가요

서 : 빛을 가지고 결과를 설명할 때 건축이 돋보이게 하는가 아니면 텍스쳐, 분위기를 만드는 것을 중시하는 가의 차이에 있어서 후자를 더 중시하시는 것 같아요.

박 : 그런 면에서는 남성적이진 않죠

서 : 식물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도 여성적이라고 느끼는 것 같아요. 모형마다 모두 나무가 꽂혀있고.(웃음) 단순히 식물이 외부에 남는 공간에 조성하는 것 넘어서, 전시도 식물 가지고 하셨던 것으로 아는데. 식물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요. 사무실에 식물도 많고(웃음). 식물에 대한 애착이 특별히 있어 보이는 것 같아요.

박 : 어느 순간 계속 옆에 두고 싶은 거 같아요.

서 : 젊었을 적에는 사람을 좋아하고, 조금 더 나이가 들면 동물을 좋아하고, 더 나이가 들면서 식물을 좋아하고, 결국에는 수석처럼 무생물까지 넘어간다는 순리를 따르고 계신 건가요? (웃음)

박 : 오브제, 오랜 시간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형태들, 돌에 담겨 있는 시간이 느껴 져서 너무 좋아요. 그래서 돌에 물도 주고 씻기도 하고. 그래서 지금 홍은동 주택 프로젝트에서도 땅을 파면서 나온 돌들을 모두 가져다 놨어요. 주택이 완성되면 저는 저 돌들을 어떻게든 다시 가져다 놓을 거에요. 그렇게 움직임이 없고 액션이 없는 것들, 토템 같은 것들에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어요. 이우환, 이타미 준에 의한 영향도 있었어요. 이우환 작가의 책들을 보면 무생물 가지고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서 : 소장님을 보면 보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따뜻하고, 회의보단 가능성을, 작업에 대해서도 폐쇄적이기보다는 열려있고, 남들과 교류도 활발하고, 그건 단순히 의지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닐 것 같은데, 유년시절의 환경에서도 영향이 있었나요? 어릴 적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박 : 어느 만큼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막바지부터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바닷가에서 살았어요. 이 차선도로를 지나면 바로 해변이었던 집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매일 아침 저녁으로 바다를 볼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바다 소리며, 냄새, 습한 공기를 느끼며 자랐죠. 서울에 오면서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던 지점이 이거 하나였어요. 스케일에 대한 것. 해봐야 일 킬로미터짜리 한강 폭, 하지만 바다의 스케일은 그게 아니잖아요. 그런 환경이 제게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주말이면 매일 아침마다 해변에서 운동했고, 오랫동안 광안리 바닷가를 봐왔어요. 바다가 주는 압도감과 두려움이 공존되고. 해풍의 질감이나 향에서 느껴지는 이런 오감이 삶에 침투해져 있었던 것은 맞는 것 같아요. 그게 지금의 작업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물론 무관하지는 않겠죠.

서 : 오늘 이야기가 다 풀리는 것 같네요. (웃음)

인터뷰어 : 서재원
정 리 : 선우욱
날 짜 : 2020년 05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