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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병_문도호제

짓기와 만들기를 넘어 조율하기 (기획, 운영, 관리)까지를 건축가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싶어한다. 이를 위해 일반적인 설계 사무소의 시스템이 아닌 인테리어, 시공, 그래픽, F&B, 부동산 운영 등을 담당하는 각각의 팀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중간주거’연작으로는 <해방촌 해방구> <풍년빌라> <여인숙> <고야네> <19 meets 2> 등을 완성했거나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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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역과 콜라보

박 : 2007년부터 6년 동안 SAAI건축에서 임 소장과 함께 사무실을 하면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전 김하나 대표와 이야기하면서 비슷한 질문을 했는데 학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생각할 때 너무 획일적이고 좁은 선택권을 두고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임 소장은 한국에서는 건축을 전공했지만 드물게 건축을 포함해 기획자로서, 문화개척자로서 다방면의 일들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실무 이후 홍대 앞에서 직접 카페 기획과 운영도 하고 출판과 컨설팅까지 다양하게 해 왔는데, 돌이켜보면 그런 남다른 이력이 어떤지요?

임 : 지금은 건축뿐 아니라 대부분의 전문직업의 업역 경계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간 디자이너’라는 단어가 꽤 생소했지만 지금은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공간 디자이너’라니. 건축도 아니고 인테리어도 아니고. 이렇게 새로운 영역의 틈새에서 일들이 계속 생기고 있습니다. 건축은 아주 오래된 직업이기도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들은 인증과 관련된 것도 있고 아직은 보수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필드에 나와 보면 현실은 전혀 다르고, 향후에는 상황이 점점 더 바뀔 것 같다는 걸 경험 해 보면서 많이 느끼잖아요. 저는 의도를 했든 그렇지 않든, 설계사무실도 다녔고 인테리어 사무실도 다니면서 직간접적으로 여러 영역을 경험했고, 운이 좋아서 카페도 직접 운영하고, 다방면의 일을 하면서 조금 폭이 넓어졌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앞으로는 점점 더 그런 것이 요구되는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에는 전공도 중요하고 열심히 해야 되는데, 그것 말고도 다른 방면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이 분명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언젠가 이병엽 소장과 대화하면서 젊은 건축가들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것이 유리한 것이 아니냐 했더니, 요즘 젊은 건축가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그런 감각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했던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오로지 건축만 해서는 시장이 열려 있지 않다는 얘기와 동일한 얘기거든요. 계속 변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어야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들었고, 혼자서 다 할 수 없으면 네트워크라도 구축을 해야 되는 것 같아요. 그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유일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그게 아니면 정말 VVIP시장에서 오로지 건축으로만 승부하는 쪽으로 포커싱을 맞춰야 되겠죠.

박 : 이전에 생각했던 방향과 지금의 흐름이 상당히 일치한다고 생각하고 있군요.

임 : 사실은 이렇게 변할 거라고는 저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우리 이전에 맨날 사무실에 있었을 때 박 소장하고 저하고 ‘근본이 없다.’ 그랬잖아요. 좋은 학교, 즉 전통적인 건축 명문학교에 진학해 좋은 설계사무실과 훌륭한 스승을 통해서 배운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면서 터득했으니까. 그게 사실은 아웃사이더일 수도 있는데, 지금 와서는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이런 토대가 없으면 지금 건축계가 굉장히 어려울 수도 있는 상황인 거죠. 누가 그러더라고요. 현재 대한민국 건축계는 30대, 40대 듣보잡들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다고…

박 : 앞으로는 건축의 업역이 훨씬 더 넓혀질 가능성이 있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임 : 네. ‘이게 건축이다 아니다’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작년에 ‘공간’지에서 30대 건축가들을 다룰 때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이, 예전에는 건축가가 이런 걸 왜 하지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30대 건축가들이 계속 건축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었어요.

박 : 맞아요. 이전과 비교하면 일이 많았을 때야 그런 일들을 하지 않아도 지탱이 가능했다고 한다면, 지금은 상황과 시장이 많이 달라졌으니 생존 전략으로 업역을 넓혀갈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훨씬 더 하이브리드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이런 방향의 전환은 한국만의 변화가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일의 방향이 더욱 풍부해지고 여러 다양한 팀들과 협업할 기회가 생기면서 임 소장처럼 훨씬 더 유연한 사무실 구조가 결합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SAAI건축을 나와 ‘문도호제’를 시작을 하면서 일 하는 방식과 구조에 대해 설명을 좀 듣고 싶어요.

임 : 일단은 독립을 하면서 직원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어요. 제가 몸 담았던 SAAI건축을 포함해 대부분의 설계사무실이 결국 건축이라는 고정적인 카테고리 안에서 문제를 풀어내지 못하면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죠.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든 해봐야겠다는 생각과 그런 일들은 일반적인 설계사무소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하나 있었고요. 두 번째는 운영을 해보면 고정비용 지출이 많잖아요. 이것을 시스템으로 구축해서 안정적으로 돌아가게 하려면 적절한 규모의 프로젝트와 프로젝트 개수, 그리고 적절한 인원의 스텝들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틀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또 몇 년이 걸리잖아요. 제가 그걸 또 못 하겠는 거예요. 벌써 십 몇 년을 했는데 다시 그걸 만들어? 십 년은 그래도 파트너가 있었으니까 같이 협의하고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만들어도 부침이 있었는데, 내가 혼자서 이걸 또 만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컸어요. 그래서 어차피 제가 하는 일의 성격이 건축, 인테리어, 기획 등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차라리 혼자서 가볍게 움직이고 내가 움직이는 범위에서 할 수 있는 팀들, 그 프로젝트의 성격에 맞는 팀들과 협업 또는 파트너 관계를 구축해서 네트워킹으로 일을 해보겠다고 생각 한 거죠. 독립한지 햇수로는 4년인데 스텝은 정식으로 두질 않았어요. 물론 장단점이 있죠. 처음 독립을 했을 때는 나 혼자 움직이는 거니까 내가 가능한 범위의 프로젝트 수와 규모의 일만 하겠다고 했지만, 진행하면서는 그게 참 쉽지가 않아요. 들어오는 일을 무조건 다 고사할 수도 없고. 그러다 보니 프로젝트 숫자가 많아지게 되고, 프로젝트마다 협업하는 팀이 다르면 그걸 다 관리해야 하는데, 프로젝트 위치가 흩어져 있으니까 종국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어요. 이제 곧 사무실을 옮기는데, 스텝에 대해 고민 중이라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혼자 할 때 조금 더 결과물에 대해서는 만족한 것들이 많이 나오죠. 왜냐하면 그걸 잘 할 수 있는 팀과 협업하니까 결과물에 대해서는 확실히 만족하는 것 같아요.

박 : 협업하면서 진행한 프로젝트가 지금까지 쭉 있어 왔잖아요. 각각의 프로젝트마다 협업하는 방식들이 달랐나요? 어떤 기준에 의해서 협업 방식들이 결정되나요?

임 : 예를 들면 ‘해방촌 해방구’ 같은 경우는 신축이잖아요. 그러면 건축사사무소이거나 혹은 그 건축 일을 할 수 있는 팀이어야 되는 거죠. 어떤 프로젝트는 리뉴얼이지만 굳이 대수선이거나 그런 과정을 거치치 않아도 되면 인테리어를 하는 팀과 일을 하고, 어떤 경우는 디자인만 하거나 어떤 경우는 시공까지 같이 할 수 있는 팀과 일을 하죠. 기획 과정에서는 건축이나 인테리어 팀보다 부동산에 관련된 일이라면 ‘삼시옷’하고 한다거나, 아니면 다른 방향들로 각 팀을 구성하면서 적절하게 대응을 하고 있죠.

(해방촌 해방구 참조)

박 : 그렇게 협업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부분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물론 유연한 구조를 가질 수 있고, 유연한 구조에서 훨씬 더 집중적으로 프로젝트들을 완성하거나 임 소장만의 색깔을 집어넣을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만, 누군가와 같이 하다 보면 어려움이 있잖아요. 저희도 협업 프로젝트를 두 번 해봤는데 힘들더라고요.

임 : 협업하는 과정에 분야가 다르면 사실 별로 충돌할 일이 없어요. 제가 의견을 내고 서로 조율하는 과정에서 저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거나 저보다 더 전문적이면 제가 그 얘기를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돼요. ‘풍년빌라’도 그렇고 ‘여인숙’도 그렇고, ‘삼시옷’하고 부동산부터 하는 거면 제가 관여해서 계속 컨트롤 하겠지만 세부적 항목들은 의견을 많이 따르는 편이고요. 그런 경우 각자 전문 분야에서 자기 할일 열심히 하고 어긋나지 않게만 조율하면 되는 거죠. 대신 ‘해방촌 해방구’의 경우 건축분야에서 디자인을 같이 협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반드시 프로젝트 메인 담당과 의사 결정권자를 미리 선정하고 진행하죠. 나중에 발표 할 때 결과물은 같이 책임지고, 크레딧을 공유해 구분이 돼야 해요. 조율이 안 되면 누군가는 끌고 가야 된다는 것을 미리 정해놓아야 되는 거죠. 그리고 어려운 점은 처음에 안 맞춰 본 팀하고 할 때 그 과정이 좀 오래 걸리지만, 그게 잘 되면 그 이후 유연하게 돌아가죠. 사실 인테리어 관련해서는 ‘쿼츠랩’과 오래 했는데, 그 친구들이 저의 제자들이거든요. 독립한지 오 년 만에 빠르게 성장을 했어요. 같이 일도 많이 하고 어느 정도 안정되는 상황이 됐을 때, 이 친구들이 이제 저랑 같이 하기에는 너무 커 버린 거예요. 회사 자체의 규모도 프로젝트의 성격도 그 전엔 제가 가져오는 일들이 메인이 됐다고 한다면, 이제는 제 일은 서브가 될 정도로 회사가 커진 거예요. 지금은 일을 같이 할 때 부탁해야 되는 상황으로 바뀌었는데, 그건 뭐 기쁜 상황이니까. 그런 것들이 조금 어려운 경우죠.

박 : 건축을 포함해 다양한 일을 전개해 나가면서 콜라보 작업을 하면서 어려웠던 부분 중의 하나가 비용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임 : 그것도 미리 정해야죠. 그리고 만약 디자인뿐 아니라 기획이 포함되면, 설계비를 포함한 전체 비용을 좀 더 높게 책정해서 같이 하는 팀과 분배를 적정하게 하고, 그게 아니고 건축만 하는 거라면, 제 몫을 좀 줄이는 거예요. 클라이언트에게 다른 팀과 협업해야 하니 더 달라고 하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하나 밖에 없으면 이 팀하고 하기는 어려우니, 그럴 경우 프로젝트 베이스로 개인과 진행하기도 해요. 그래서 수익을 나누는 방법이나 일하는 방법도 다양하게 조금 시도해 보고 있어요.

박 : 역시나 구조만큼이나 일하는 방식도 유연하군요.

임 : 프로젝트마다 성격이 다 달라서 오히려 그걸 동일하게 적용하기가 쉽지 않아요.

박 : 기획자로서 ‘비하인드’부터 시작해 동네를 만들어내는 또는 분위기를 이끌어나가는 역할을 오랫동안 해 왔습니다. 그런 기획자로서의 역할과 건축가로서의 역할은 비율이 어느 정도나 되고 있어요?

임 : 일의 양이 현재로서는 반반인 것 같아요. 프로젝트도 단순히 건축이나 인테리어 디자인만 해달라고 오는 프로젝트도 있고, 초기 기획단계에서 끝까지 다 가야 되는 것도 있고, 어떤 경우는 기획만 하는 경우도 있어요. 비율로 따지면 지금은 반반이긴 한데, 대부분 그냥 건축 일이나 인테리어, 디자인만 해달라고 하는 일들도 그대로 내버려두지는 않아요. 일단 프로그램이나 운영, 관리에 대한 부분까지 제안하죠. 그렇게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프로젝트 성격을 기획하면서 자연스럽게 디자인으로 전개되고,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얘기를 해보는 편이에요. 그래서 받아들여지면 좋은 작업이 되는 거죠.

(해방촌 해방구 참조2)


중간주거

박 : 그런 면에서는 ‘해방촌 해방구’처럼 도심형 별장을 제안하면서 새로운 컨셉과 시도가 좋아 보였는데,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임 : 원래 ‘세컨 하우스’가 제일 중요한 건축주의 이슈였고, 14평 정도의 땅은 본인이 가지고 있었어요. 그 땅에 일 층 목조주택으로 지은 집이 있었는데 건폐율이 100%였죠. 처음에는 간단하게 구조 좀 변경하고 인테리어 정도 하려고 했는데, 일단은 불법인데다가 구조를 건드리기 시작하면 건물이 무너질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이런저런 비용을 다 따지면 차라리 새로 짓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축을 제안했는데 그게 받아들여져서 진행했어요. 도심형 별장으로 생각한 것은 건축주가 애초에 가지고 있던 컨셉이었는데, 손님을 초대해서 식사를 하는 공간이 별도로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최종 요구 사항에 있었어요.

박 : 그래서 그런 공간이 1층에 배치되었군요.

임 : 네. 그런데 사실 그게 꼭 1층일 필요는 없었죠. 어쨌든 공간적으로 좀 구분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땅이 10평인데 그걸 수평적으로 나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수직적으로 구분한 거죠.

박 : 손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을 식당으로 규정해 이 영역을 입구에서 바로 연결될 수 있도록 세미퍼블릭한 성격으로 일층에 배치된 것이군요.

임 : 그 부분을 2층으로 할 거냐 ,1층으로 할 거냐, 최상층으로 할 거냐 ,살짝 고민이 있었던 것이 ‘해방촌 해방구’의 상층부 뷰가 좀 괜찮았어요. 여러 스터디를 통해 1층이 좋겠다고 제안드렸고 그렇게 결정되었는데, 도로에서 바로 두세 단 내려오는 1층은 신발을 신고 주방과 다이닝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건축주 본인의 아파트도 그렇고 대부분의 집들이 신발을 벗는 순간 남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것으로 느끼는데, 이 부분에서 심리적인 허들이 생기는 거예요. 신발을 신고 들어오면 그게 설사 사적인 영역이라도 심리적인 허들이 한번 낮아지니까 그게 훨씬 더 좋겠다고 제안 드렸죠. 대신 2층부터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생활하면 완전히 사적인 곳이니, 손님이 오셨을 때는 1층만 사용하면 좋겠다는 제안에 클라이언트도 쉽게 납득이 힘들었던지 논의를 계속하다가 도저히 결론이 안 나서 가족회의를 하겠다고 했어요. 며칠 있다가 연락이 왔는데 가족회의에서도 2:2로 도저히 결정이 안 난다고 임소장이 제안 하는 대로 해 달라고 해서 결국 1층은 신발을 신게 됐죠.

박 : 그러면 1층에서 계단으로 연결될 때 어디서 신발을 벗어요? 신발을 벗고 올라가요 올라가서 신발을 벗어요?

임 : 올라가서 신발을 벗어요. 얼마 전 오픈하우스서울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그때 클라이언트가 자기가 이 집을 지으면서 가장 잘한 결정이 1층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거였다고 얘기를 해주셔서 좋았죠. 그런 식으로 공간이 구분되고 신발 신는 것도 그렇지만 사용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그 집의 가능성이 넓어진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처음에 손님을 초대해서 자기가 밥을 해주고 대접하는 공간이 별도로 있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그 범위가 가족이나 친지에 한정이 되었는데, 누구나 쉽게 들어 올 수 있게 된 거에요. 대학원생 수업을 거기서 하기도 하고, 아침에 사외이사 조찬회의도 하고, 친구들 등산 갔다가 오면 들리기도 해서, 4월에 준공을 했는데 6개월 동안 170명이 다녀갔어요.

박 : 조금 바빴겠는데요?

임 : 네 조금 바빴죠. 그곳을 좋아하고 즐기기도 하니까, 일주일에 거의 한 두 번은 손님 초대하고 매일 출근하듯 하는데, 무엇보다 집이 작으니까 15분이면 청소를 다 할 수 있대요. 청소 하고 1층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바깥 청소하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건물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잠깐 들어오시라고 해서 이야기를 하기도 하죠. 이게 점점 넓어지니까 집이란 곳이 굉장히 사적인 영역이지만 접근에 대한 허들을 어떻게 하느냐와 공간적으로 어떻게 구성을 하느냐에 따라 동네로 확장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느꼈던 거죠. 그리고 ‘풍년빌라’는 제가 설계한 것은 아니지만 디렉션을 할 때 많은 영향을 받았죠. ‘해방촌 해방구’는 세컨 하우스니까 그런 실험이 좀 쉽게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데일리 하우스는 다르잖아요. 그런데 남의 데일리 하우스를 실험하라고 할 수는 없으니, 이 때다 싶어 우리가 살 집인 ‘풍년빌라’에 한 번 실험해보자 했던 거예요. 여기 ‘풍년빌라’는 세 집이 있는데 세 집 동일하게 현관문을 열면 바로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게 아니라 일정부분을 신발을 신고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풍년빌라 참조)

박 : ‘해방촌 해방구’에서 했던 실험을 좀 더 확장해서 시도하게 되었군요. 그러면 세 집이 집마다 그런 영역의 크기나 성격이 다른가요?

임 : 영역이 다르죠. 사이즈도 다르고 프로그램도 조금 달라요. 저희 집은 거실, 주방, 다이닝 이렇게 사용하고 있지만, 3층에 있는 싱글하우스는 딱 다이닝과 키친만 있구요. 나머지 부부가 사는 집은 약간 라운지의 성격이라 책도 있고 서재처럼 되어 있어요.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영역이 ‘해방촌 해방구’에 했던 것처럼 주방과 다이닝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현관이 넓어졌다는 개념으로 생각하시면 편할 것 같아요. ‘풍년빌라’에서 공용 공간은 좁은 계단 밖에 없는데, 계단과 현관이 맞붙어있어 현관문을 열면 관습적으로 알고 있는 사이즈가 아니라 서로 조금 다른 사이즈와 형태와 용도로 현관이 확장돼서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래서 문을 닫으면 완전히 독립적인 공간인데, 여는 순간 퍼블릭하게 공유할 수 있게 바뀌는 특징이 있어요. 문을 열고 닫는 것은 남이 지시하는 게 아니라 그 공간을 소유하는 사람이 판단하는 거죠.

박 : ‘해방촌 해방구’도 그렇고, ‘풍년빌라’도 신발을 벗는 행위가 기능이랑 연결되어 공간의 실제 쓰임새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실험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 내용을 ‘중간주거’라는 단어를 쓰면서 개념을 만들어나가고 있는데, 처음에 그것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네요.

임 : 그 단어를 쓴 것은 ‘해방촌 해방구’를 하기 전에 ‘하우스 비전’을 진행하면서 컨셉으로 일단 제안했던 거예요. 그때는 현관이 확장되고 신발을 신고 벗고의 문제가 아니라, 아주 원초적으로 ‘주방과 다이닝의 기능을 집의 다른 기능과 분리 시켜 보자.’는 생각부터 시작했어요. 왜냐하면 주방과 다이닝은 하루 세끼 밥을 먹어도 서너 시간 외에는 다 비어 있는 공간이니 그 비어있는 공간을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때 쓰는 거죠. 집의 기능은 돈이나 쓰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수십 가지로 나눠질 수 있어요. AV룸도 만들 수 있고, 차고도 만들 수 있고 엄청나게 많은 집의 기능일지라도 소위 거주한다고 할 때 네 가지 기능이 기본이에요. 씻고(화장실과 욕실), 먹고(부엌, 식당), 그 다음엔 놀거나 자고(거실과 침실) 이 네 개만 있으면 소위 말하는 원룸의 구조인 거예요. 그런데 거기서 부엌과 식당만 빼면 이게 ‘스테이’가 되는 거예요. 부엌과 식당이 주거와 스테이를 구분하는 제일 핵심적인 기능이라고 한다면, 이걸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네 개를 묶으면 집이 됐다가 떨어트리면 스테이가 되는 거죠. 그러면 이것을 쓰는 사람, 즉 소유하는 사람이 판단해서 같이 쓸 때는 독립적인 집이고 떨어트릴 때는 스테이로 쓸 수 있는 거죠. 그러면 이 기능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또, 어떤 때 이 영역을 오픈 하느냐에 따라 동네 영역으로 확장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영역이 동네에 한 집만 있으면, 그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세 네 개가 된다고 한다면 스테이를 묶어놓고 나머지 기능을 돌아가며 쓸 수 있으니까 내 집이 확장되는 개념인 거잖아요. 그래서 ‘중간주거’라는 개념은 필요에 따라 집이 됐다가 필요에 따라 스테이가 됐다가, 이런 방식으로 나머지 기능을 조금씩 다르게 해서 동네 커뮤니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래서 그것을 ‘중간주거’로 잡아서 진행하다가, 하우스비전이 거의 1년 반 넘게 답보상태였는데, 다행히 ‘해방촌 해방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걸 한번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죠.

박 : 이전 SAAI건축 때 동네를 기반으로 근생 기능을 공유하자는 아이디어가 이어지는 결과군요. 지금도 기억납니다. 홍대 근처의 여러 건물들을 연결시켜 동네를 연결하는 내용이었는데, 이 내용이 응암동에서 시작되는군요. 저희 사무실도 홍은동에 ‘홍은이음’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동네의 작은 상점들을 연결해 이 동네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매개공간을 만들고 있는데, 비슷한 성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약간 퍼블릭 하게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각각 서로 다른 기능들이 만들어졌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각 층마다 그런 기능들이 다르게 되는 기준이 뭔가가 있나요? 규모의 차이인가요?

임 : 규모도 있고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도 다르죠. ‘풍년빌라’의 3층, 4층을 쓰는 분은 방송작가 부부고, 한 명은 그림 그리는 친구인데, 방송작가는 미팅이 잦아요. 그러니까 3층에서는 신발 신고 들어가서 미팅하고, 손님은 위층에 있는 프라이빗 한 공간으로 올라갈 필요가 없어요. 혼자 사는 친구는 일러스트하는 친구인데 2층이 작업실이고 3층이 주거에요.

박 : 기본적으로 세 집이 다 두 개 층씩 사용하고 계단으로 연결되는 구조이군요. 그러면 복도나 계단에서 좀 더 마주칠 수밖에 없겠네요.

임 : 네. 통로가 넓으면 피해가면 되는데, 계단실이 좁거든요. 그리고 계단실의 밀도가 시간대 별로 달라요. 낮 시간에는 모두 다 있으니까 3층에서 4층 올라가는 계단은 한 팀이 쓰고 밑에는 두 팀. 1층은 세 팀이 다 쓰게 돼요. 그래서 낮에는 완전히 퍼블릭 한 영역으로 읽혀지는데, 저녁이 되면 문을 열어둬도 프라이빗 한 느낌이 들어요. 왜냐하면 1층으로는 내려오는 일이 없으니까. 그게 살면서 재미있는 부분이죠.

박 : 공용부분이 항상 공용으로 사용되지 않고 같이 사용하기도 하고 혼자 사용하기도 하는 변화가 공간 사용의 재미이군요. 1층의 임 소장의 거실은 열어 놓으면 공용공간의 성격을 가질 수 있군요.

임 : 반대로 우리도 위층의 공간들을 자주 사용합니다. 사실은 여기 1층 거실에 자주 모여요. 모일 수밖에 없죠. 왜냐면 항상 드나드는 걸 알고 있으니까 올라가다가 밥 먹었어? 이러면 와서 먹기도 하고, 커피 같은 걸 자연스럽게 마시기도 하고, 그래서 주로 밥을 먹거나 커피 할 때 여기서 하고요. 4층이 술 마시기 좋아요. 그래서 같이 술 마실 땐 4층에 올라가고, 그리고 지금 우리가 이렇게 점유하고 있으면 집 식구가 갈 곳이 없잖아요? 그럼 TV를 찾아서 가는데, 그게 3층에 사는 친구의 퍼블릭 한 주방이에요. 가서 같이 얘기도 하고 TV보고, 우리가 가면 내려오고, 이런 방식으로 유연하게 쓰고 있어요. 서로 각자 영역을 신발 신는 영역까지는 조금씩 점유하면서 살고 있는 방식이죠.

박 : 그러니까 각자의 영역을 뭔가 조금씩 모자라게 만들어 놓았군요.

임 : 맞아요. 대신 완벽하게 독립적인 영역은 코어로 반드시 보장이 되는 거죠. 그렇지만 사실 여기 세 집이 모두 면적이 작거든요. 손님이 오면 잠잘 데가 없어요. 근처에 곧 완공될 ‘여인숙’이라는, ‘풍년빌라’처럼 세 집이 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거기도 똑같이 컴팩트 해요. 그래서 모두 6집의 모자란 공간들을 다 모아서 ‘여인숙’에 6-7평 정도로 스테이를 하나 만들 거예요. 손님이 오면 가서 일정 금액을 내고 그 방을 쓰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거죠

박 : 가까운 거리에 ‘풍년빌라’와 연결될 수 있는 ‘여인숙’도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계획하신 건가요?

임 : 네 ‘여인숙’ 2층에 스테이로 쓰는 공간이 있고, 제 사무실이 나머지 절반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그래서 스테이로 예약이 되지 않을 때는 클라이언트를 위한 프레젠테이션 룸이 될 수도 있고, 회의실이 될 수도 있어요. 1층은 작게 커머셜이 들어가는데 거기서 필요할 때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사용할 수도 있어서, 어쨌든 이 집과 저 집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걸 하나는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박 : 양쪽 집에서 부족한 기능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연결고리가 있는 거네요. ‘여인숙’ 1층은 뭐가 들어오나요?

임 : 지금은 빵집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 동네에 적당한 빵집이 없기도 하고, 1층 공간이 작아서 어딘가에서 빵을 구워서 매일매일 가져오면 그날그날 소진하는 방식으로 하는 거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