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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 건축 (平成の建築)
1989~2019

박: 한국에서는 개념상 익숙하지는 않지만 2019년 5월부터 레이와(令和)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떻게 본다면 일본에서 또 하나의 시대적 변곡점으로 의식되는데, 이전의 시대인 헤이세이(平成)시대의 건축에 대한 특징이 있다면 어떤 특징이 있는가요?

이노쿠마: 헤이세이(平成)의 시대* 를 말하려면 그 전의 쇼와(昭和)시대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쇼와 시대는 전후의 고도 경제 성장기이며 경제의 성장과 함께 유명한 건축가가 많은 작품을 국내외에 남긴 시대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단게 겐조(丹下健三)씨, 쿠로가와 기쇼(黒川紀章)씨, 마키 후미히코(槇文彦)씨, 안도 타다오(安藤忠雄)씨 등입니다. 그 이후 헤이세이(平成)의 시대가 거품 붕괴로 시작되면서 대략은 정체된 시대이며 ‘잃어버린 30년’으로도 불립니다. 건축가의 활약의 장소도 알기 쉽게 직접적으로 확대한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1995년에는 고베 대지진, 옴 진리교에 의한 사린(SARIN)테러사건** 등이 발생하여 사회가 큰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특히 지진 재해는 건축을 만드는 가치를 다시 묻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헤이세이(平成)시대에서 국제적으로 활약하게 된 이토 토요(伊東豊雄)씨, 세지마 카즈요(妹島和世)씨, 후지모토 소스케(藤本壮介)씨, 이시가미 준야(石上純也)씨 등은 뛰어난 크리에이티비티로 국내에 작품을 만들어 해외에 진출할 기회를 만든 건축가들입니다. 단게, 쿠로가와, 마키에 비하면 모두 일본에서의 작품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로 해외 데뷔했습니다. 그 후 IT 거품 붕괴와 리먼 쇼크(2008년)사태가 있기 전까지 짧지만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었던 시기에 건축가들은 오모테산도 등의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퀄리티 높은 패션 브랜드의 건축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리먼 쇼크에 이어 2011년에는 동 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건축 이전에 마을자체가 없어져 버린 현실은 이토씨와 같은 시대에 활약하고 있는 건축가들로 하여금 "사람을 위한 건축"이라는 가치를 목표로 하는 분위기를 건축계에 뒤덮도록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헤이세이(平成)시대는 건축을 둘러싼 가치관 자체가 큰 사건과 함께 흔들리고 있던 시대로 해석 되어 지고 있습니다.

* 헤이세이(平成) 시대 : 1989년부터 2019년까지의 연호. 연호는 군주제 국가에서 임금이 즉위하는 해에 붙이는 이름을 말한다. 2019년 5월부로 레이와(令和) 연호가 사용되며, 헤이세이 이전은 쇼와(昭和 1926년부터 1989년까지의 연호) 연호가 사용되었다
** 사린(SARIN)테러사건1984년 생성된 신흥종교단체인 옴 진리교가, 1995년 3월 20일 도쿄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살포했던 테러사건

박: 헤이세이 시대의 건축에서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몇몇 건축물을 말한다면 그 이유와 특징을 듣고 싶습니다.

이노쿠마: 카나자와 21세기 미술관(金沢21世紀美術館 )입니다. 우리는 이를 일본에서 공공 건축의 이미지를 쇄신한 건축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21세기 미술관 이전의 공공 건축은 비교적 무겁고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일반인이나 건축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건축은 화려한 소재도 없고 건축이 주장하는 것보다는 사람이 주역이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아름답게 보이는 건축입니다. 설계자 본인이 지향하는 바와 같이 건축이 마치 공원처럼 이용 되는 혁명적인 건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좋지 않은 일들이 많았던 헤이세이(平成) 시대에 따뜻하며 밝게 열린 세계관을 실현한 이 건축은 건축가가 그리는 진짜 풍요로움을 순수하게 재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 헤이세이 시대의 건축이라면 아마도 가깝게는 방금 카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을 언급한 것과 같이 SANNA(세지마 카즈요와 니시자와 류에)의 역할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일본의 건축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1900년대 초부터 건축의 흐름과 연계된 계보가 선명하게 나타난다는 것도 특집입니다. 일본 건축 계보를 본 기억도 있는데 영향력 있는 건축가나 교수와 연결되어 그 철학을 유지하거나 계승하고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노쿠마: 헤이세이(平成) 건축에 대한 가치관은 앞서 말했듯이 시대와 함께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쇼와(昭和) 시대에는 각각의 건축가가 각각의 계보를 이어 그 비전을 지속시키면서 영향력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는 큰 흐름이라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헤이세이 시대는 한 작가라도 이토 토요 씨처럼 지진으로 대폭 방향을 바꾸거나 같은 계보에 속하고 있어도 독립한 시기에 따라 작업 풍도 다르며 독립 후에도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헤이세이 시대의 다음 시대는 보다 건축 계보가 무너져 가는 시대가 되는 것 같습니다. 변해가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활동 해 나가고 싶습니다.

박: 일본 건축 계보에 대한 내용처럼 이 내용을 정리 했거나 하고 있는 학자가 있는가요?

이노쿠마: 이가라시 타로(五十嵐太郎)씨라고 생각해요.

(일본 건축계보 참조)

박: 이가라시 타로의 정리된 내용은 본적이 있습니다. 1960년대 이후의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의 경우 1990년대까지만 해도 어디 사무실 출신이나, 어느 학교 출신에 대한 의식이 있어 왔지만 지금은 그 의식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 의미에 대해 연구가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일본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공공건축의 역할에 대하여 (公共建築の役割について)

박: 나루세 이노쿠마 사무소에서 한국에서의 첫 작업으로 공공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습니다. 이전에 일본에서도 공공 건축 프로젝트로 ‘리쿠 카페’가 있었습니다. 그 프로젝트에서 공공성에 대한 관점으로 어떤 것이 있었나요?

나루세: ‘리쿠 카페’는 (관이 발주한다는 의미에서의) 공공 프로젝트가 아닌 개인 분들이 만든 NPO(비영리단체) 법인으로부터의 발주가 되었습니다. ‘리쿠 카페’는 현지 의사, 치과 의사, 약국의 약사와 그 가족들이 지진 재해로 마을이 모두 휩쓸려간 이후 지역민의 거처를 만들고자 하면서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우리는 인연이 있어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었고 자금 조달과 기획, 운영의 지원, 건축의 설계를 담당하였습니다. 카페가 지어진 토지는 본래 그 마을의 의사 소유의 땅으로, 그 지역에 개방이 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지역을 생각하는 건축주의 힘이 발휘된 프로젝트입니다. 결과적으로 지역민의 거처가 되어 현지의 어머니들이 일하는 장소가 되었고 나아가 의료 활동도 하는 복지의 거점이 되고 있습니다.

박: 공공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발주의 방식이 조금 다르게 출발된 예 이군요. 한국에서도 공공 프로젝트는 민간이 아닌 관에서 발주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일본에서 관 발주의 프로젝트가 민간 프로젝트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나루세: 가장 큰 차이는 관 발주의 공공 프로젝트의 경우 실제로 그 장소를 운영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건축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일본에는 지정 관리자 제도라고 해서 민간 사업자가 공공 시설의 운영을 담당하는 제도가 있습니다만 대개의 경우는 지정 관리자는 건축의 설계가 진행 되고 나서 선정됩니다. 그 때문에 운영 방법이나 사용 방식의 이미지를 서로 맞춰나는 것이 불가능 한 상태로 설계를 진행해 나가야만 하기 때문에 아무리 여러 제안을 하며 설계를 하여도 사용하기 시작하면 어려운 부분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운영자는 자신들이 관계되어 만든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애착을 가지기 어렵고, 만일 사용하기 어려웠을 경우에도 아이디어보다 불만이 먼저 나와 버리는 일도 많은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민간의 경우는 실제로 운영하는 분들과 미팅을 거듭하면서 만들어 가기 때문에 운영이 시작되고도 자신들이 그 장소를 어떻게든 해보자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박: 그 부분은 한국도 거의 마찬가지 입니다. 나루세씨가 생각하는 민간 프로젝트와 달리 공공 프로젝트에서의 중요한 관점은 무엇인가요?

나루세: 공공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사람이 그 장소에 있는 것을 허용 하는 장소의 분위기를 어떻게 만드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장소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럭셔리한 호텔에서 평상시와 다른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이나, 식당이나 가게 등은 그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을 향해 디자인을 첨예화 시키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양성이 있는 것이 풍요롭다는 것의 가치관 가까이에 있습니다. 다만, 그러한 하나의 방향으로 특화되지 않은 열린 장소가 일본에서는 너무나 부족하며 이용자도 적거나 한정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하철 안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시끄럽다든가 보육원 건설에 반대의 소리가 높아지는 등 타인에게 무관용인 분위기가 있습니다만, 그러한 일들의 근원도 사실은 다양성이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공의 장소에서는 어떤 사람이든 서 있을 곳이 있어, 서로 함께 있어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그러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 공공 프로젝트에서 어려운 부분은 불특정 다수가 사용한다는 점에서 건축가의 의지의 방향이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공공 프로젝트에서 건축가가 개입해야 하는 방향과 정도를 어떻게 정하고 접근하는가요?

나루세: 건축가가 시민 워크숍 등을 실시해 실제로 장소를 사용하는 사람의 의견을 흡수하고자 하는 노력은 일본의 여러 공공 프로젝트에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기능이나 사용 편의성은 이러한 의견을 소중히 여기고 장소의 역사나 풍토, 그 지역 사람들의 기질 등을 고려하면서 건축이 바람직한 분위기를 결정해 가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건축가의 역할을 점점 넓혀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 녹사평 프로젝트는 공공 프로젝트로써 또 다른 서울시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다. 기능적으로 본다면 단지 지하철 역이지만 이 공간을 문화와 접목 시키려는 새로운 시도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프로젝트를 접하면서 이러한 공공건축에서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 느낀 점을 듣고 싶습니다.

이노쿠마: 외부에서 역으로 들어갈 때 개찰구전까지의 역은 공원과 함께 무료로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진정한 공공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일이나 일상이 모바일화 되는 상황에서 사람의 이동은 더욱 더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이동 공간의 중요도도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여행자에게 있어서는 터미널 역이나 공항 등의 이동의 요점이 되는 공간은 하나의 인상적인 풍경으로서 다가오는 경우도 많지 않을까요?
녹사평역은 서울시 지하철 네트워크 중 하나의 점에 불과하지만 이미지 속에서는 서울시 전체의 이미지를 혁신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한 중요한 프로젝트에 함께 하게 되어 다시 한번 영광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또 가까운 미래에 용산 미군 기지가 향후 시민을 위한 공공 공간(공원)이 되면서 녹사평역이 어떤 퍼포먼스를 발휘해 갈지 매우 기대하고 있습니다.

박: 녹사평역 프로젝트에 대해 일본(신건축)에도 소개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에서의 반응이나 의견들도 다음에 다시 이야기 하면 어떨까 합니다. 앞으로 좋은 행보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어 : 박창현
정 리 : 권현수
날 자 : 2019년 5월

(녹사평 프로젝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