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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중,유소래_Nameless

불예측성으로부터 부딪힘으로 경험하다.

나은중 1978년 출생, 03년 홍익대학교 건축공학 학사졸업 후 배병길도시건축연구소, 동우건축에서 실무를 쌓았다. 09년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유소래 건축가와 함께 NAMELESS사무실을 설립했다.
유소래 1982년 출생, 06년 고려대학교 건축학 학사졸업 후 뉴욕으로 유학을 갔다. 09년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대학원 건축학 석사졸업했다.
NAMELESS는 2011년 뉴욕건축연맹 젊은건축가상을 받았고, 같은 해, 한국으로 사무실을 확장했다. 국제공모와 다양한 전시활동 이후 2013 첫 완공작인 RW콘크리트교회가 있다.
www.namelessarchitecture.com

뉴욕에서 한국으로

박: 한국에서 학사를 마치고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한국에선 유학을 다녀오지 않는 것이 색다른 케이스로 느껴질 정도로 유학을 많이 가는데요. 외국에서 졸업 후 그 곳에서 자리를 잡거나, 바로 귀국해 일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네임리스는 뉴욕에서 사무실을 설립했다가,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이유가 있었나요?

나: 의도되거나, 계획된 방향은 아니었습니다. 항상 삶에 있어서 우연성이 뭔가를 할 계기들인 것 같습니다. 뉴욕에서 1년넘게 그 곳에서 발생하는 문화적인 이야기들 혹은 현상들, 건축의 시대성을 고민했었어요. 그 고민의 매개체는 공모전이었고, 뉴욕에서 한 공모전은 솔리드한 단단한 건축공모전은 아니었습니다. 아트 파빌리온, 쉘터, 공원 개념적인 조형물 같은 것들 이었습니다.

유: 옛날 것들을 어떻게 다시 사용하느냐의 레노베이션, 재활성화 같은 계획들이었습니다.

나: 예, 도시리바이벌 계획. 그런 것들을 아이디어적이게 작업을 했었죠.

박: 그런 것들은 미국에서 졸업한 친구들 대부분의 상황들인 것 같습니다.

나: 즐거웠던 것은 미국이라는 장소를 외지사람으로서 컨텍스트를 읽는 것, 작업을 하는 방식도 이방인적이었습니다. 한국이라는 땅에 깊숙이 반영된 삶을 이루는 방식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곳에서 사회적인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24시간 중에 9시간 자고 나머지 시간은 다른 행위들보다는 작업만 했었습니다. 철두철미하게 건축만 고민하는 과정에 있었고, 현실적인 것보다는 매우 이상적인 생각들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서 지인을 통해, 건물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는 고민하지 않고 선택했습니다. 현실적인 것을 만들 수 있는, 구축의 기회라고 생각해 소중했습니다. 설계를 했지만, 결국 지어지지 않았죠. 그 프로젝트가 빵창고였습니다. (이름이 빵창고가 된 계기는 빵을 만드는 분이 건축주였고, 작업실과 빵을 팔 수 있는, 예산이 너무 적어서 창고를 만든다는 건축적인 것들은 최소화된 아무런 장식도 없는 기본적인 element로만 만들어졌기에 그 의미가 들어갔다.)

박: 그럼 그 프로젝트부터 한국에 들어오게 된 건가요?

나: 그렇죠. 그 프로젝트 때 들어왔습니다.

박: 작업을 한국에서 했나요? 미국에서 했나요?

나: 초반에는 반반이었던 것 같아요. 근데 빵창고 프로젝트를 하면서 다른 프로젝트 이야기가 같이 됐었습니다. 그게 RW콘크리트교회였어요.

박: 그게 몇 년도였나요?

유: 빵창고가 이야기 되었던 건 2010년도였어요. 아마 RW콘크리트교회는 2011년도에요.

경험의 지점

박: 뉴욕에서 졸업 후 실무에 대한 경험들이 있었나요?

나: 실무를 아주 잠깐 3개월정도 인턴생활을 했었어요. 그 때도 저희 작업에 대한 꿈이 있었어요.

박: 한국에 들어와서는 실무에 대한 작업을 할 생각이 있었나요?

나: 그런 생각은 없었어요. 환경이란 것이 중요하게 느껴지는 게, 졸업하고 뉴욕에서 인턴생활이 상당한 자극이었습니다. 외국사람들은 비자 때문에 취업을 꼭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런 문제가 없는 미국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실에 대한 감각이 나쁘게 말하면 부재하고, 좋게 말하면 자기 인생에 대한 욕구와 그걸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이 단단했습니다. 졸업하고 뭐 할거냐 라고 물어보면 ‘내 건물, 내 것을 하고 싶다’라고 말했어요. ‘현실적인 것이 부모로부터 끊기지 않느냐’, ‘어떻게 먹고 살 거냐’는 질문에 ‘낮에는 내 꺼 하고 밤에는 바텐더를 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대안으로 현실적인 것을 충족하려고 하죠. 이런 상황들이 한국에서는 힘든 상황이잖아요. 자기 건축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당장 버틸 수 없는 상황인 것을 아니까 밤에는 바텐더를 한다는 것이죠. 특히, 부모님들은 용납도 안하고 상황이 안 되는 것이죠.

유: 그게 건축뿐만이 아니라 졸업하고 취직을 못하면 불안하게 느끼는 게 우리 사회의 모습인 것 같아요.

박: 사실 건축 같은 경우에는 실무에 대한 부분들이 실 경험이잖아요. 학교에서 모든 것이 가상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절대 이야기 할 수 없는 것들, 가르쳐주지 않는 상황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 차이를 줄여 줄 수 있는 부분들이 실무경험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조바심이 나서 취직을 한다는 것이 아닌 한국의 보통 단계 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무의 경험 없이 건물을 지으면서 부딪히는 것들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비단, 기술적인 또는 기능적인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현장상황의 컨트롤도 포함되고, 건축주와의 관계를 자기가 어떻게 만들어나가고 조절해 나갈 것인지, 어떤 포지션으로 나갈 것인지에 대한 부분도 그렇습니다. 그런 관계들을 어떻게 조절할 건지 그 부분들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이잖아요. 사무실 경영부분도 마찬가지이고요. 사무실 오픈을 하는 것은 사회적인 책무가 지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뽑거나 사회적인 관계를 결탁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죠. 그런 것들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건물을 시작하게 된 그 차이가 어땠었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나: 그것은 경험을 대하는 태도의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저는 예전에 한국에서 4년정도 실무를 했었습니다. 당시 실무를 하면서 느꼈던 것을 지금 와서 생각해본다면, 제가 다녔던 사무실을 도제식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나를 누구한테 소개할 때도 내 제자로 얘기하고 직원이라고 얘기 안 했었죠. 방법도 관계도 도제식이라는 것이 적합했습니다. 거기에서 무언가를 배운다 경험한다라는 관계를 만드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무의 경험이 부재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분명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직원으로서 실무가 선행되고 그 경험에 의해 내 것을 하느냐 아니면 내 것을 하면서 정말 부딪히면서 풀어가느냐 그것은 뭐가 좋다의 이야기는 전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행착오가 많은 것은 후자이죠. 그 과정에서 오히려 훨씬 더 건강한 자기 수련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건축을 하면서 실무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쩌면 건축에 있어서의 편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건축주를 만나는 행위가 제일 어려운 부분입니다. 아무런 사회적인 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뭔가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는 게 제일 어렵죠. 사회적인 시스템에서 10년전에는 실무경험 없이 자기 일을 한다는 게 불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이미 탄탄한 관계를 가지고 시작하는 게 그 때의 상황이었다고 하면, 지금은 아무런 것도 없이 부딪혀 볼 수 있는 지점이 생기지 않았나 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가능한 사회적인 관계가 형성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박: 뉴욕에서 졸업 후에 competition 류의 작업들이 많습니다. 사무실을 운영하면서도 그런 류의 작업들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말씀하신 지점인가요?

나: 그렇습니다. 건축이라는 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첫 번째 아주 단단한 전통적인 의미의 건축이 있고, 두 번째 저희 같은 젊은 사람들이 하는 조금은 유연한 방식의 건축행위들이 있습니다. 단단함과 유연함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성질보다는 건축을 대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일상적인 건물의 재료를 통해서 공간, 장소를 구축한다는 의미와 다르게 건축의 의미를 조금 확장해서 본다면, 사람이 점유하는 공간, 어떤 장소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풍경에 대한 이야기 일 수도 있고, 그 풍경이라는 게 permanent한 건축만 건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시적일 수도 있습니다.

유: permanent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일시적일 뿐인데, 조금 길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나: 저도 그 생각에 굉장히 동의를 하는 게, 물리적인 장소를 만들었지만, 그 안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이나 사람들의 행위들은 너무나 일시적인 이야기들의 축척 된 결과물입니다. 건물이라는 게 동선이 발생합니다. 물론 주택이라면 일괄된 패턴을 갖겠지만, 퍼블릭한 건축은 행위의 패턴들은 정말 일시적이고, 축척 되어서 그것이 ‘건축에서 사람들의 행위다’라고 이야기 됩니다. 그 행위들은 일시적인데, 만약에 그 건축이라는 공간 자체가 일시적이면 그게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건물 만든다고 하면 최소한 인력이상의 어떤 예산이 필요하잖아요. 만약 개인 건축주면 경험이 없는 사람한테, 자기의 전 재산을 주고 맡기기에 리스크가 큽니다. 경험이 부재한 상태에서 건축을 하기 힘들다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공간자체가 일시적이면 건축의 의미, 경계라는 것이 확장된다. 혹은 건축이라는 게 ‘이것도 건축이다’라고 이야기 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그게 어떤 실무의 경험이 부재하더라도 할 수 있는 건축의 영역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박: 맞습니다. 실제로 클라이언트를 두고 건물을 짓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건물들에 대한 부분은 실무 경험이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거 말고 전시와 관련된 부분들 또는 건축에 대한 뜻이나 내용들을 확장 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작업들, 이런 것들은 실무가 없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말랑말랑한 접근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 그러나 말을 하면서도 계속 고민이 되는 지점인데요. 제가 아까 단단한 건축과 유연한 건축이 단순히 물성이 아니라 의미가 확장된 것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어떤 분께 이 말을 드렸더니 전시에 대해서 ‘네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들은 건축이 아닌가? 건축을 하기 위한 매개체가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박: 그런가요?

나: 그 질문을 받고 나서 제가 꺼내고 있는 이 이야기가 상당히 이분법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표현이나 제 생각도, 어쩌면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시를 두고, ‘건축을 하기 위해서 이런 쓸데없는 것들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당연히 그렇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생각과 콘크리트로 된 건물 두 개가 부딪히는 이분법인 것 같습니다. 그 생각을 하는 저마저도 그런 것 같고요.

박: 굳이 그게 다를까 싶어요. 왜냐하면 건물이라고 하는 것이, 전시에서 끄집어 낼 수 있는 단어와 관심 가지고 있는 관점이나 내용들을 포함해서 아이디어를 가지고 구현해 내거나 전달하기 위한 표현의 결과물로서의 전시들은 훨씬 더 말랑말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능이 없어도 되고, 클라이언트도 없어도 되고, 돈이 많이 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반대의 상황인 건물이긴 하지만 여기 안에서도 사실은 뚜렷한 자기의 자세와 내용, 관점들이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요?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건 아니지만 들어가야지만 건축가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나: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해주신 것 같네요. 그 맥락을 알지 못하면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유: 저희가 이전 세대 건축가분들께 그러한 리액션을 받았었어요.

나: ‘왜 젊은 세대들은 건축을 안 하느냐?’, ‘왜 설치나 전시만 하는가?’ 그런 질문들에서 고민이 됐습니다. 이것이 과연 이분법적으로 생각해야 될 것들인가? 그런 반응들을 보면서 제가 생각하고 있는 건축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민을 하게 되는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발생하는 부딪히는 지점에서 불협화음들이죠. 제가 직접 경험한 사례들도 있고요. 경험이 부재한 상황에서 부딪히면서 느끼는 것들은 훨씬 더 강렬하게 내 것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부딪히는 게 저희는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감당할 수만 있다고 하면요. (웃음)

일상의 물질과 재현된 장소

박: 저도 그런 방향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분야의 친구들과 협업을 한다든지, 콜라보 작업이든지. 조금씩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하다 보니까 건축이라고 하는 것은 예전의 우리가 알고 있던 요만큼의 건축이 아니라 훨씬 더 그 단어에 대한 뜻을 좀 더 확장 시킬 수 있는 여지들은 충분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들을 무엇으로 설명을 할 것인지에 따라서 얘는 건축이 아님에도 사실은 건축에 대한 이야기들을 충분히 끄집어 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네임리스가 가지고 있는 건축에 대한 이야기들이 굉장히 흥미가 있습니다. 좀 전에 말씀하신 ‘태도’가 관점이나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포인트라고 여겨집니다. 몇몇 전시를 통해서 썼던 단어들 중에, 일상의 물질과 재현된 장소를 이야기하면서 그 사이의 관계와 그 것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써의 풍경을 이야기했는데, 그 것에 대한 설명을 좀 더 듣고 싶네요. 여러 작업들에서도 이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관심을 가지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일상의 물질이 어떤 물질인지, 재현된 장소가 어떤 내용으로 쓴 단어이고, 그 둘의 관계가 풍경으로 어떻게 설명되는지 듣고 싶습니다.

나: 작업으로 예를 들면, 캐나다 위니펙에서 스프링이 들어가있는 고무호수로 한 ‘contemporary igloo’가 그런 관점을 가지고 한 작업이었습니다. 영하 3-40도 되는 장소에 과연 쉘터를 만들려고 하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일반적인 재료로 건축을 하는 것이 유효한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Context자체가 너무 추워서 꽝꽝 얼어버린 10km정도 되는 강이었습니다. 강 위에 쉘터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여기에서 발생하는 재료로 새로운 구축의 의미를 실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강물과 극단의 추위가 재료였던 셈이죠. 뉴욕에서의 ‘play cloud’도 같은 의미에서 공기를 하나의 재료로 생각했었습니다. 미메시스 하우스도 장소에서 발생한 풍경을 재료로 생각했습니다. 저는 자연과 인공이 건축가들에게 항상 부딪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건축이라는 것은 파괴적인 본성이 있습니다. 아무리 ‘natural하고 sustainable하다.’는 개념으로 이야기해도, 건축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의미로 행해지려면 발생하는 과정에서 땅을 파헤치고 기초를 넣어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재료들, 지금 얘기한 재료는 자연적인 재료지만, 일상의 물질이라는 것이 우리가 마시는 공기일 수도 있고, 강에선 물일 수도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자연적인 재료뿐만 아니라 스티로폼은 건축가들에게 가장 일상적인 재료입니다. 만약에 반대로 이 EPS가 과연 인공이라고 질문한다면 잘 모르겠습니다. 일상의 물질이라는 것은 저희가 재료에 대해 생각하는 개념입니다.

박: 그냥 장소가 아닌 재현된 장소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유: Context입니다.

나: 은유적인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건축가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일상의 물질이라는 것은 만연된 쉽게 찾을 수 있는 재료이며, 텍토닉일 수도 있습니다. 그게 그대로 존재하면 그냥 공기일 뿐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매개체가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 매개체는 건축가의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고, 물리적인 구축의 방법일수도 있죠. 재현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물리적인 사과가 있는데, 그걸 어떤 식으로 representation 한다는 것이, 재현 행위의 방식에 따라서 수채화가 될 수도, 추상화된 composition일수도 있습니다. 혹은 어떤 예술가는 물리적인 돌 한 덩어리가 사과라고 말할 수도 있죠. 재현이라는 것은 건축가의 행위의 삽입인 것 같습니다. 하나의 매개체가 됐을 때, 발생되는 지점이 사이의 어떤 관계라는 의미입니다.

박: 재료들을 가지고 본인이 재해석한 어떤 장소를 결합해서 만들어진 결과물로서의 풍경을 말하는 것이라고 이해됩니다.

나: 일상의 물질이라는 말이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아주 특별한, 건축에서 다뤄지지 않는 소재만이 아닌 것 같아요.

박: 그 반대이지 않나요?

나: 예, 그 두 가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박: 네, 그런 것에 대한 풍경들을 만들어낸 것 자체가 어떤 의도된 풍경을 가지고 있잖아요. 구현해내고자 하는 최종 목표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작업들을 한 것이, 어떨 때는 전시나 미술처럼 설치물로 나올 수도 있고, 반대로 단단한 건축물로 나올 수도 있죠. 그 부분은 사실 좋습니다. 그 밸런스가 끝까지 쭉 연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쪽으로만 가면 딱딱하거나 너무 가벼워지는 상황이 될 테니까요.

Reference

박: 여기서 결과적으로 결과물의 풍경이 있다고 하면 처음에 작업들을 시작하면서 제시하는 레퍼런스들이 있을 텐데요. 그 레퍼런스의 시작점과 내용들은 이런 어떤 풍경에 대한부분들을 의도 또는 의식하고 시작하는지 궁금합니다. 의문스러웠던 부분들은 처음에 작업들을 설명하거나 이야기하면서 나왔던 레퍼런스 자체가 (어쩌면 익숙할지 모르겠지만) 서양의 예전 이미지를 가지고 설명을 시작했었는데, 그게 왜 그런 류의 것으로 시작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시작점이 마지막으로 만들어내려고 하는 풍경의 결과물하고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 일단 저는 서구의 것과 동양의 것으로 레퍼런스를 딱히 구분 짓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걸 구분 짓기 보다는 scientific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 장소에서 발생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때문에, 그 장소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들이 레퍼런스가 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뉴욕 브롱스의 다리는 100년전의 맨하튼으로 물을 공급하는 수로, 사회적인 기반시설이었습니다. 그 수로를 리노베이션 하는 작업이었죠. 수로를 문화적인 인프라 시설로 만드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조사하다가 나온 특정 사진이 레퍼런스인 이미지로 웹사이트에 소개가 되어있습니다.

박: 중요하지 않은 사진일 수도 있겠네요?

나: 리서치의 과정이었죠. 그런데 단지 수로사진이어서 들어간 것은 아니고, 수로의 구조적인 의미를 프로젝트에 반영했습니다. 그래서 스페인에 있는 로마시대 수로 구조를 보여주는 이미지였고, 그것이 설계에 반영되었습니다. ‘play cloud’도 마찬가지이고, 보스턴 교도소 벽도 그렇고 하나의 맥락이죠. The Wall Project는 교도소 벽을 재생하는 작업인데, 어떤 사진가의 작업이 레퍼런스가 되었습니다.

유: 사람들이 안가는 장소인데, 어떻게 하면 도시적인 장소로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박: 그건 결과적으로 더 벽을 만드는 것이지 않나요? 소통이 아닌.

나: 물리적인 벽은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교도소의 물리적인 벽이 존재하되, 안과 밖이 소통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 것이죠. 그것을 하나의 vertical pharming을 통해 만든다는 의미의 레퍼런스는 어떤 사진가의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얻었습니다. 교도소가 생성되고 소멸되는 과정의 사진이었는데, 교도소의 벽이 사라지면서 넘어의 자연이 안으로 들어오는 맥락이 우리가 생각하는 물리적인 벽이어야 하지만 상호간의 소통을 만든다는 컨셉을 설명하는 레퍼런스였습니다. 서구의 것이라는 개념은 우리 것과 외부의 것이라는 이분법이 아닌 장소의 의미, 만들어내는 새로운 건축 혹은 풍경에서 맞닿아 있는 사진이나, 텍스트가 리서치 과정의 전반적인 상황에서 나온 것들 입니다.

박: 환경이나 경험 자체가 주어지는 것으로부터 레퍼런스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완공 RW콘크리트 교회

박: 최근에 지어진 첫 완공작이 있습니다. 그 프로젝트의 개념적인 레퍼런스와 교회에 대한 첫 관심 또는, 끝까지 남아있던 코어의 내용이 궁금합니다. 실제로 진행을 하면서 이 내용에서 처음 시작했던 지점의 관심, 끝까지 남아있던 부분에서 어떤 것을 말하고 싶나요?

나: 교회 프로젝트는 저는 시행착오의 단계였다고 생각합니다.

박: 그러기엔 아깝지 않나요? 처음부터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하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첫 프로젝트에 애정이 있었을 텐데요.

유: 애증의 관계이죠. (웃음)

박: 의지를 넣고 싶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형태적으로 잘 정돈된 결과인 것 같아요. 첫 프로젝트 치고 욕심을 제어하는 것이 쉽지 않음에도 잘 나온 것 같습니다.

유: 지금 와서 뒤돌아보면 과정이 굉장히 주워 담느라고 바빴다고 얘기합니다.

박: 어떤 것을 주워 담았나요?

나: 실제로 거의 저희가 설계했다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건축주가 실 배치와 복도 위치 등을 그려주셨는데, 사실상 그냥 평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대안을 말씀 드리면서 보이드, 내부 공간들에 대한 생각을 전해 드리면 잘 반영이 안됐습니다. 나중에 오프 더 레코드가 될 수도 있겠네요. 내부에서 발생하는 평면들에 담긴 생각들이 교회의 입장이었습니다.

박: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린 프로젝트는 아니었어요. 오픈도 하셨고, 감추지도 않았습니다.

나: 주워담기 바빴다는 표현이, 저희들이 강력한 statement를 가지고 시작했으나 현실과 부딪혔습니다. 시행착오치고 건축주와 소통은 윤활했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관철시키는 방법론, 그들의 생각을 수용하는 공략이든 컨트롤이 힘들었죠.

박: 처음에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나: 교회라는 생각을 했을 때, 사이트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들을 수렴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10년도에 땅을 처음 갔는데, 별내 신도시가 공사중이었습니다.

유: 빈 땅만 다져져 있는 상태였어요.

나: 저 멀리 고층 아파트들이 세워지고 있었고, 대지는 신도시의 edge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한쪽은 자연이라는 풍경이 소멸되고 생성되고 있었죠. 반대편은 야산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자연이 소멸되면서 아파트가 생성되는 사이에 교회라는 종교시설이 들어간다고 하면, 이것은 우리가 보고 있는 풍경 자체의 매개체는 욕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본의 이야길 일수도 있고, 한국의 현대 사회구조적인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신도시가 발생하고 있는 저 지점에 거대한 욕망들 거기에 새로 들어설 어마어마한 근생과 삶의 이야기들이 아마도 시설 중에서 종교시설이라는 물리적인 장소가 그나마 욕망들을 수렴해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리적으로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었고, 건축이 행위를 하는 능동적인 장치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풍경의 의미로서 접근은 가능하지 않을까 했었습니다.

박: 사실은 외국에서 온 특히, 젊은친구들은 우리나라의 도시적인 상황, 내용, 과정들을 궁금해합니다. 어떻게 이런 풍경이 나왔는지, 아파트가 꽉 차있는 신도시 풍경이나, 인위적으로 도시를 이식시키는 상황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빠르게 변화해 왔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그런 것들의 반성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천천히 하자, 제한을 두자는 이야기가 반복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가 해왔던 방법, 해내는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누군가에 의해서 새로운 선, 영역이 생기죠. 그 선은 기존의 상황과 새로 만들어진 이식된 상황의 접점이 없는 새로운 것을 집어 넣습니다. 풍경, 기억에 대한 접점이 없이 아무렇지 않게 들어갑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엔 더 많았죠. 도시를 만드는 것이 수출되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어떻게 이렇게 빨리 만들 수 있는 가란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자랑스럽게 수출이 되고 있죠. 사실 문화에 대한 얘기들이 치고 들어올 수 없는 상황으로 왔었습니다. 그런 류의 이야기들을 하려면 그 것에 대한 자세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별내면도 마찬가지로 컨텍스트가 사진에서 드러나듯이 뒷 배경은 산과 나무지만, 그것들을 들어내고 경계를 만드는 것들이 들어섰습니다. 어느 포지션에 맞춰서 작업을 했는지에 상관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했을 수도 있고, 기억을 가지고 문제의식 속에 작업을 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edge에 대지가 있으면서 이런 부분의 마찰이나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텐데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어떻게 접근하고 제안했었는지, 지금 현재 완성된 시점에서 어떻게 보여지는지 궁금합니다.

나: 우리가 만들어서 제안을 하는 과정이 최소화됐었습니다. 초기 단계부터 효율적인 평면을 교회측에서 제시했고, 교회 내부적으로 토론에 의해 프로그램상 짜여 있었습니다. 저희들이 그 프로그램에 끼어들 틈이 없었죠. 건축적인 부분에서도 목사님께서 기능적으로 실 배치를 해주셨습니다. 저희들이 해왔던 것은 교회에서 요구하는 기능적인 시설배치였습니다. 그래도 외부적인 것은 우리에게 더 자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박: 그런 접근은 어떻게 했습니까?

나: 교회가 어떤 모습을 갖춰야 한다는 접근은 없었습니다.

유: 교회에서는 ‘외부가 어떻게 생겼으면 좋겠다’는 것은 없었습니다. 전형적인 모습보다 모던한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나: 건축주의 요구를 우리가 어떻게 수용하느냐의 부딪힘이었습니다.

박: 건축주의 요구를 알고 시작한 건가요?

나: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미팅 단계마다 내부적으로 짜인 시스템을 말해주셨습니다.

박: 앞으로 그런 일이 들어오면 어떻게 대처 하시겠습니까?

나: 그런데 처음부터 그 상황을 인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박: 그걸 파악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그렇다면 한 번 해봤으니까 그런 일이 또 있다면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나: 상황의 변수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저희는 오히려 세상의 불예측성을 믿습니다. 건축의 기본 전제조건인 것 같습니다. 경험이 가지고 있는 제한된 사고의 범위가 방해가 되지만, 경험치를 통해 관계를 파악한다는 것이 위험한 것 같습니다. 그 위험이 결과적으로 위험한 것이 아니라, 상황의 불예측함을 말합니다.

박: 이해가 됩니다. 상황이 발생했을 때, 취하는 방법은 개인마다 다를 것 같아 궁금했습니다. 사회의 구조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있죠. 교회라면 그 교회가 가진 정치적인 시스템이 있습니다. 한 명이 독재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있습니다. 종교 건축이라는 것이 그래서 어려운 것 같습니다.

불예측성에 대응하기

나: 저희가 첫 번째 종교건축하고, 지금 두 번째 학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프로젝트가 가지는 특징은 너무나 확고한 시스템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건축의 시스템도 끝나고 나서 알았죠. 이미 그 강론적인 이야기들이 있고, 건축주가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학교는 그 강론을 교육청이라는 집단이 컨트롤합니다. 그 집단은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지점에 대해서 너무나 보수적입니다.

유: 특히 학교건축은 매뉴얼을 가지고 있어요.

나: 재료 하나도 다뤄보지 않은 것을 가져가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학교건축의 다양성이 부재한 것 같아요.

박: 그렇습니다. 사회가 가진 구조, 시스템이 있죠. 종교나 학교 같은 것들은 특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기능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것에 대해 대응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싸워서 바꿔나갈 것이냐, 두 번째는 반대로 잘 활용해서 파도타기 하듯이 잘 해쳐나가는가 입니다. 즉, 부정하는가, 수긍하는가 입니다.

유: 저희는 완전 1번이에요.

나: 현재까지 1번입니다. 2번이 가능한 것은 시스템을 다 알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삼각학교 프로젝트는 3년동안 싸워왔습니다. 형태가 날라간 적도 있습니다.

박: 원래부터 삼각형이었습니까?

나: 예, 첫 제안은 삼각형이었지만, 나중에 바뀌었습니다.

유: 프로젝트 자체가 심의되는 과정이 있었어요. 학교를 지을 때는 교육청 소속의 연구원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몰랐어요.

나: 그곳에서 삼각형 형태가 거절당했습니다. 그 이후에 연구원에 배치 의뢰를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유: 새로 만들어지는 학교는 그런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미리 알았으면 설계 사무소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이 가능한 시스템이었으나, 그 시스템을 알지 못해서 벌어진 상황이었어요.

나: 교육청이 연구소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은 공무원들의 책임회피라고 생각합니다. 이후에 연구소 평면과 저희 평면에 대한 학교관계자 분들의 투표로 결국 저희 평면이 선택 되었습니다.

박: 그게 가능했나요?

나: 관계자들의 투표에 의해 결정된 것이 때문에 증거자료가 있는 것이라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유: 아, ‘사회가 이렇게 돌아가는구나’를 알았어요. (웃음)

나: 처음으로 돌아가면 싸울 것이냐, 파도타기를 할 것이냐? 젊은 사람들은 싸우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이분법적이진 않아요. 처음에 이 시스템을 알았다면 효율적으로 끌고 갈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사회적인 시스템에서 내가 어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취해야 하는 관계들을 무시하고 가면 과정이 너무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만약에 인지하고 있다면 그것을 활용해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사회적 관계로 이용해야 되는 건 분명합니다. 제가 볼 땐 과정상에 우선은 싸우는 것이에요. 파도타기라는 것으로 안 되는 게 더 많습니다. 알아도 고정된 시스템에서 안 이루어지는 것이 많습니다. 이 사람들 안 써본 재료 절대 안 쓰죠. 그래도 싸워야 하나하나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박: 사실, 선배들이 얼마나 그런 것들을 해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회의 이미 고착화된, 줄서기처럼 만들어진 틀이 관피아, 교피아들로 나타나 문제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이 자신들의 시스템을 더 유지시키려고 할 것이고,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발언들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부분까지 할지 어느 단계에서 조절할지는 나이와 경력, 위치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부분은 건축가들이 만들어 나가고 이해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점점 그런 관들이 많이 생길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곧 선배가 될 테니까, 해야 될 일인 것 같습니다.

나: 맞는 말씀입니다. 건축가들의 현실적인 과정에서의 어려움들이 때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실무적으로 어려운 일들이 있었는데, 과정에서 부딪히는 지점들이 사실 재미있는 것 같아요. 순간순간은 어렵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훨씬 더 어려움이 클수록 결과물의 깊이는 큰 것 같습니다. 경험의 측면에서 부딪히면서 직설적인 경험이 가치가 분명 있어요. 사회적인 부분은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박: 사회적인 구조 안에서 어떤 포지션을 취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전시와 건축에서 이분법적인 것이 아닌 어떤 자세로 나아가고 있는지가 궁금했어요. 그래서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고 싶습니다. ‘깨지기 쉬운’이런 단어들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나: 큰 틀에서 너무 재미있는 얘기입니다. 저희는 아직 젊다고 생각해요. 규정된 언어로 젊은 건축가라고 불리겠지만, 우리의 역할, 행위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규정된 철학이 없는 것이 특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떤 단단한 철학이 먼저 있다면 부딪혀야 할 순간들이 더 많을 것 입니다.

유: 지금 관심 있는 화두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 젊은 건축가들에게 선배들의 말씀은 반박을 이끄는 것도 있습니다. 선배건축가의 요구에서 “너희들의 철학이 뭐냐?”라는 질문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 철학을 말하면 빈틈을 지적하십니다. 그 빈틈이라는 것이 젊은 건축가들만의 특권이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젊은 건축가들은 이 허접함, 검증되지 않은 상황들이 훨씬 젊은 건축가다워요. 우리도 언어로 얘기하지만, 규정된 철학은 부재하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유: 부재보다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어요.

나: 좋게 말하면 ‘유동적이다.’ 입니다.

박: 나오는 결과물을 엮어서 얘기할 수 있겠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은 의지의 차이겠지요. 하지만 어느 관점에서 무엇을 가지고 선택할 것인가는 항상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항상 바뀔지언정. 그럼에도 유형의 바운더리는 있는 것 같습니다. ‘하다 보면 나중에 규정이 되겠지.’는 다른 것 같습니다. 무엇이 좋다 나쁘다는 아니고,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런 것이 관심이 많아.’라는 것이 철학으로 표현되지 않아도 되고, 거대한 담론이나 만들어내야 하는 부담감이 아닌 프로젝트나 전시로 말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본인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죠. 무게를 주고 부담을 가지고 얘기할 것인지도 있겠지만, 간단하게 좋다고 말하는 것은 충분히 얘기할 거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 부분들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