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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노베이션 작업

박: 최근에 목조건물 리노베이션만 몇 개가 있는 걸로 아는데요.

최: 리노베이션 일에는 건축가의 여러 가지 역할이 녹아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역할, 기술 직능인의 역할, 교육 등 여러 입장이 있는데, 저희는 리노베이션을 사회 참여로의 역할로 보는 것을 불편해 합니다. 마을 만들기, 도시 재생 그런 관점은 저희가 의식은 하지만 주된 화두는 아니고, 저희가 리노베이션에 담는 가치는 영속성입니다. 모든 건축가들이 그렇잖아요 자기 건물이 영원했으면 하는 욕망이 있잖아요. 그렇게 만들어진 건물 조차도 황폐화 된 사례를 많이 보거든요. 예를 들어 알바로 시자가 저소득층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모던한 방식의, 하얀색 외벽을 가진 집합주거 건물을 만들었는데 30~40년 지나서 가보면 슬럼화 되어 있고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는 대상으로 전락한 모습을 보면 매우 허망합니다. 하지만 목조건물은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험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특정한 기능을 적합하게 담으려고 노력한 건물은 그 기능이 바뀌었을 때, 그 가치가 떨어질 수 밖에 없잖아요. 교도소로 사용되던 공간이 학교로 바뀌기 힘든 것처럼. 하지만 목조건물은 거기에 대해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더 목재라는 재료가 단단하지 않고 불에 타기 쉽고 영원할 것 같지 않은 재료임에도 불구하고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내부 프로그램이 굉장히 자주 바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오히려 더 영속성을 가질 것 같습니다. 향수 어린 시절로 목조건물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취향의 차이에 의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이런 취향을 가진 계층이 분명히 존재하시죠. 그런 분들처럼 목조 건물을 그저 옛 추억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것을 선택해서 갖는 가치에 대해 생각 합니다. 목조 건물의 리노베이션에 저희는 이러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합니다.

박: 목조 건물에 대한 생각을 넘어선, 오피스아키텍톤이 가지고 있는 리노베이션의 가치가 있을 것 같은데. 올해 공간 잡지에서 리노베이션과 관련된 테마 기획으로 '도심지 안의 빈 땅이나 빈 집, 빈 건물을 어떻게 활용 하느냐?' 에 대해 서울, 북경, 동경이나 오사카, 동북아시아의 세 도시가 진행하는 방향에 대한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인구들이 줄고 사회적인 문제들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의 타개책으로 불도저식 아파트 일변도의 재개발, 리노베이션의 방법, 도시재생이라는 방법 등 여러 방법들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오피스아키텍톤이 가지고 있는, 리노베이션 작업의 가치와, 작업 시 기존에 있던 건물의 여러 요소 중 가져갈 것 혹은 없앨 것에 대한 판단 기준, 기능과 부합하는 새로운 요소들을 넣는 상황에서의 기준들을 묻고 싶네요.

최: 저희 사무실이 리노베이션의 이미지가 너무 씌워지면 안되는데...(웃음) 저희는 리노베이션 설계 기간을 3개월로 잡습니다. 1달에서 1달 반, 건물을 재해석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 뒤에 첫 미팅을 잡습니다. 현재 건물의 해석된 것들을 미팅 내용으로 하고요. 그 재해석은 건축물에 한해서가 아니라, 필지에 대한 총체적인, 역사적인 것들까지. 구청의 폐쇄지적도까지 보면서 건물의 80년, 100년의 긴 역사를 찾아보게 되다 보면, 건물이 앉혀져 있는 마을, 동네 골목길, 도시적 변화를 읽을 수 있고 공부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기회는 많이 없었지만 신축을 할 때에도, 필요한 컨텍스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과거의 기록, 현재의 변화에 대한 기록을 굉장히 중요시 여깁니다. 저희가 여유로운 시간이 생기면, 오래된 건물을 지목해서 모든 것을 정밀한 도면화 작업을 합니다. 그런 작업들은, 젊은 건축가들에게 있어 성숙한 단계까지 가는 과정의, 건축 전문가로서의 자질을 단단하게 만드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제가 한옥에 27년 정도를 살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건물이 건물다워야 하는데, 가치만을 추구하다 보면 본연의 것들을 침해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희가 리노베이션 작업을 할 때는 전형적인 주거 환경, 즉 아파트, 다세대 주택보다 주거 퀄리티가 좋은 방향으로 변화를 과감하게 하는 편이죠. 예를 들어, 흙으로 채워져 있는 부분과 회벽마감을 제거하고 단열재를 채우고 흰색 철판으로 마감을 하거나 또는 단열과 방화성능을 가진 유리를 끼운다든지 하는 방식 같은 것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주거 건물에서 최소한의 기능은 담보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인테리어 설계와 시공, 리모델링의 설계와 시공이 신축보다 각광받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가 시간을 단축시킨다는 것입니다. 특히 임대 수익이 굉장히 많이 발생하는 도심지의 경우 그 시간이 금전적으로 환원이 되니까 사람이 거기에 강박관념을 가질 수 밖에 없잖아요. 저희는 오랜 시간을 갖고 작업을 하다 보면 처음에 의도하지 않았던 디자인들이 중간중간 많이 발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무실 2층에 내부의 흙벽을 감싸기 위해 씌워진 벽지가 누적된 시간만큼이나 7겹이 덧대있었는데, 두 세 겹의 최근 벽지 안에는 연대를 추정할 수 없는 벽지들이 있었어요. 그런 것들도 타이트한 설계기간과 공사기간이 주어졌다면,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을 의식했다면, 놓치거나 버려졌을 건데. 저희는 시간의 여유들이 있었기에 작업 중에 그런 것들을 발견하게 되고, 남겨보는 시도들을 했었어요. 대중들은 그런 것에 감사해하고 의미를 부여하더라고요.

우: 그와 맥을 같이 하는 이야기인데, 저희 같은 경우, 1차 철거, 2차 철거, 3차 철거와 같이 부분적으로 진행을 합니다. 그러면서 꼼꼼한 기록을 남기기도 하고 건물을 이해하려는 작업을 동시에 합니다. 우리는 '신구를 합치는 전략을 쓰겠다', 혹은 '우리는 새로운 재료를 과감하게 믹스하는 전략을 쓰겠다' 라기 보다는 건물을 해석하는 과정 속에서 건물이 가지고 있는 가치, 숨겨진 것들을 발견하는 것이 저희의 큰 전략이에요. 여러 단계에 걸친 철거 작업도 역시 그런 가치들을 파악하기 위해서이죠. 건물을 해체하지 않으면 모르는 거니까 그런 숨겨진 가치들이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로는 일이라, 저희의 전략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건물을 해석하는 시간을 오래 갖는 것, 그것이 저희의 강점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박: 오래된 건물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장점들이 다 다르게 나타나게 되나요? 오피스 아키텍톤에서 철거 중 건져낸 보석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 방금 말씀 드린 벽지. 그리고 얼마 전 리노베이션을 마친 1960년에 지어진 일본인 방문센터라는 건물은 콘크리트 건물에 타일이 붙여져 있는 근대 건물이었거든요. 1962년에 박정희 군사정권이 수입 금지한 일본산 외장 타일을 폴리싱하여 보존하기도 했고, 그 건물에서 발견한 건 1층 부분에 방공호입니다. 원래는 시멘트로 막혀 있어서 몰랐는데 시간을 가지고 실측을 하고 철거를 하는 과정에서 그 부분이 이상하게 미장이 되어있었어요. 한번 떼내어 봤죠. 그렇게 해서 발견이 된 부분이에요. 그래서 저희가 1층 공간을 방공호를 따라 바닥을 다운 시켰어요. 그 건물의 새로운 기능이 북카페인데, 이 필지가 예전 일제의 세장형 필지이다 보니 옆 테이블과의 간섭이 너무 심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방공호 공간을 살려 단 차이를 통한 공간 구분을 시킬 수 있었던 전략을 세울 수 있었죠. 그리고 또 하나는 1960년대 지어진 도심형 한옥이라는 것을 리노베이션을 했습니다. 실측을 하다 보니 바닥이 너무 두꺼운 겁니다. 옛날방식의 구들 난방이 바닥에 깔려 있고, 그 위에 보일러 형식의 난방이 쌓여 있었어요. 어쩐지 바닥이 높더라고요.(웃음) 난방 방식의 변화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던 거죠. 그래서 그런 것들을 다 걷어서 바닥을 많이 다운 시켰어요. 층고가 매우 높아졌죠. 이 높은 층고를 활용해서 13평의 작은 집을 18평의 복층 집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저 바닥 위에 보일러 시공을 다시 했다면 이런 결과는 나올 수 없었겠죠. 이를 경험한 저희는 정말 신중히 철거를 진행하게 됩니다. 건축가가 자기의 건축적 포지션이 있고 언어가 있고 재료와 방식이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리노베이션 만큼은 그 건물이 내포하고 있는 가치와 실제가 건축가에게 좋은 영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최: 철거, 시공비를 떨어뜨리기 위해 공사를 몸소 뛰는 것이 아니라, 책상에서 옐로페이퍼로 설계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철거하면서 고민 하는 것이 더 나으니까 철거를 직접 합니다. 저번에는 집 한 채를 직접 철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도저히 힘들어서 못 하겠더라 고요. (웃음)

우: 저희와 마음이 잘 맞는 철거업자 분들까지도 ‘이건 왜 남겨야 되지?’라고 물어보시는 경우가 많아요. 옆에 보이시는 저 뜯어진 벽지도 철거업자 분들이 뜯어 놓으신 것을 가져다 놓은 거에요. 이걸 보고 우리 세 소장들이 보면서 아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치 옛 집의 기억을 수집하는 것 같아요 저희는.

박: 거의 고고학자의 자세로 건물을 대하는 기분이 드는데요? (웃음) 만약 그 건물에 살았던 사람에게 의뢰를 받았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역사와 기억을 되돌려 주는 것 같아요. 그게 대구이니까, 북성로 이니까 실제로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 부분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봤을 때, 어떤 정책적인, 도시적인 기억뿐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추억까지 다시 찾아주는 것 같네요.

최: 실제로 리서치 과정에서 그렸던 도면(warm eye’s view)을 액자로 만들어서 집주인에게 드립니다. 조감도 형식의 도면이 아닌 충감도 형식의 도면은 리노베이션 이전에 기록 도면으로 저희가 항상 그리는 도면입니다. 건물의 외피보다는 실내 공간을 표현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에 이 건물이 갖는 오랜 시간과 기억의 흔적을 드러내기에 참으로 좋은 도면입니다. 집주인들도 참 좋아합니다. 이런 철거와 기록의 과정들은 그저 무용담이 아니라 현대적 건축과정, 즉 컴퓨터 베이스의 구축과정에서 경험 할 수 없는 전통적으로 해왔던 건축의 실현화 과정과 맞닿아 있는, 더 나아가 철거의 과정에서도 건축적 과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를 부여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또한 이런 과정들이 저희에게 있어 더 큰일을 하기 위한 과도기, 배움의 방식, 경험의 방식을 위해 너무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예전에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친구들이 있었어요. 사무실을 오픈 하고 신축을 너무 하고 싶은데, 한 건도 안 들어와서 5, 6년을 인테리어만 한 경우가 있어요. 근데 인테리어를 하면서 현장을 가게 되고, 현장에서 막 일을 하다 보니 디테일과 재료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고 하며, 그 기간 동안 엄청나게 많은 공부, 수련이 되었다고 이야기 했었어요. 그런 것들이 모여 결국 다른 친구들이 가질 수 없는 강력한 무기가 된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시간이 분명히 나중에, 지금보다 훨씬 좋은 값어치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기대도 많이 되고요. 원하는 것은 분명히 시간이 지나면 가지게 것이고 그런 것들을 맡게 되었을 때 잘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네덜란드에서의 유학, 그리고 실무

박: 지금 현재 진행하고 있는 것과 유학과의 관계가 있습니까? 지금 현재 상황에서 유학을 다녀온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요? 일본의 경우 최근 유학 잘 가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우리나라의 현재 젊은 건축가들은 유학을 정말 많이 떠났던 세대이거든요. 최근에는 뜸하긴 하지만요.

최: 1990년대에 ‘건축과 환경’ 매거진에 건축가 섹션이 다년간 나온 적이 있습니다. 승효상 건축가를 포함해서 김승회 건축가 등. 저희 세대가 그런 잡지를 보며 대학 때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건축가라는 브랜드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세대입니다. 여럿이 연대해서 사무실을 여는 경우는 흔치 않았고, 그 당시에는 대형 설계 사무소와 아틀리에 작업이 딱 봐도 다를 정도로 격차가 컸었어요.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그런 것들을 봤던 세대인데다가, 2000년 전후 서울건축학교, 건국대, 경기대, 한양대 건축전문대학원이 생겨나고, 건축학 인증이라는 것이 새로이 부상하면서, 박사학위 중심의 교수진에서 새로운 튜터진이 새로 나타났습니다. 그 때 갑자기 필요했던 튜터들이 유학을 다녀온 일없는 젊은 건축가들로 채워졌었거든요. 심지어는 지역의 대학에서도 서울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건축가들을 모셔왔었죠. 그런 상황에서 유학파 건축가에 대한 환상이 클 수 밖에 없었죠. 그 분들은 굉장히 쉽게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각종 행사들, 워크샵들에서 그 젊은 당시의 지적 공백을 위안 삼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혜택들이 좋아 보였던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유학 간 이유에 순수한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었던 거죠. 그리고 지역 대학에서만 건축을 공부한 그 불리함을 바꾸기 위한 타개책이기도 했습니다. 지방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는 저희들에게 서울건축학교에서 매년 여름마다 해온 워크샵은 그러한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학교에서는 받지 못한 스튜디오식 설계 수업의 일부를 경험할 수 있었고, 가장 큰 의미는 설령 지적으로 충만하지는 못했겠지만 건축가들이 모여 공론의 장을 만들고 토론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 그 분위기는 졸업하고 건축사 자격 획득을 목표로 안주하는 삶이 아닌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지게 했어요. 네덜란드를 선택한 이유는 비주류의 나라 중에는 가장 도시, 건축의 퀄리티가 괜찮다고 생각한 나라였어요. 그리고 토지 가치가 굉장히 비쌀 수 밖에 없는 토지 조성 환경을 가진 나라, 그래서 건축 과정이 매우 조심스러웠 던 나라, 그리고 사회적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 속의 조율자로서의 건축가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죠. 건전한 이유와 불건전한 이유가 섞인 채로 유학을 갔죠. 한국의 결혼식, 돌잔치, 부모님, 가족 이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건축 공부에 매진 할 수 있었던 좋은 환경이었어요. 공론장이 상당히 활성화 되어 있는 나라였기 때문에 다양하고 심도 있는 건축 담론, 유럽 각지에서도 모이는 이벤트들이 많아 교육 과정 이외에도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상황, 대구의 상황과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시선으로 볼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저희가 돌아왔던 2000년대 후반이 우리나라가 굉장히 급변 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기존의 선배들이 유학 후 누렸던 혜택들이 주어지지 않는 척박한 환경이 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힘든 상황에 결과적으로 좋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힘든 환경 속에서 유학파 출신들이 오랜 수련을 통해서 높은 수준의 디테일들을 한국도 비로소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네요. 제가 네덜란드에서 실무경험을 오래 하지 않아서 좀더 긴 기간 실무를 한 우지현 소장님이 하실 말씀이 더 많으실 것 같습니다.

우: 저는 졸업 후 실무를 ‘OMA’에서 2년간 했습니다. 지금도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비교를 해보자면 지금 저희는 건축에 몰두하기에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거기서 실무를 하며 느꼈던 것은 ‘나중에 내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무실 직원들이 혹은 내가 건축에만 몰두 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 정도로 작업에 몰두하기에 최적화된 사무실이었어요. 물리적인 환경도 그렇지만, 클라이언트, 사용하는 재료나 자세, 협업하는 팀들, 사소하게는 점심을 뭘 먹어야 할까 하는 고민조차도 하지 않아도 되는, 건축설계만 할 수 있게 만든 사무실이었어요. 그곳의 유명세도 물론 있지만, 건축 사무실이 이 정도는 돼야겠다 라는 나름의 기준이 섰던 것 같아요. 그 사무실에서 했던 여러 의미 있고 즐거웠던 프로젝트들, 새로운 것들, 외국 건축가들과의 협업, 그리고 제 뒤에 붙는 타이틀 같은 장점들보다 제가 얻은 가장 큰 경험은 건축하기 최고인 환경에서 일을 해봤구나 하는 것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최: 유학에 대한 경험들에 대한 저의 생각은 계속 바뀌겠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네덜란드의 상황과 학교의 특수함이긴 한데,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수와 활동하는 건축가가 굉장히 많았다는 것이 가장 저에게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학생수 2천명, 교직원 1천명. 너무나 많은 토론회와 이벤트, 그리고 체계화된 건축가협회, 수많은 담론의 장들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어요. 한국에만 있었으면, 건물을 단지 웰메이드 하기 위한 부담감이 컸을 것 같아요. 건물을 잘 짓고, 좋은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일을 많이 하고. 그런 훈련을 통해 점점 더 잘 만들고 퀄리티 있게 만들고. 근데 유학 가서 한국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상황과 담론의 장 속에 풍덩 빠져보고 남았던 큰 교훈은 건축행위라는 것이 그저 건물을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의 연장선에 놓여져야 한다 라는 것입니다. 저의 작은 프로젝트들로 하여금, 그것들이 쌓여서 큰 틀에서 봤을 때 세상이 한 발짝 앞으로 나가는데 조금이라도 일조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런 의미 망 속에서 건축을 해야겠다 라는 생각들을 유학 가 있는 동안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귀국 후 사무실을 어디에 잡을까, 어떤 일을 할까 에 대한 생각이, 생존의 전략이 아니라 긴 건축가의 여정에서 어떻게 해야 의미가 되겠다 라는 것을 유학 중에 깨달은 것 같습니다. 이런 내용들이 저에게 가장 컸습니다. 리노베이션 역시 이런 의미 속에 있는 것이고요.

오피스 아키텍톤이 나가고자 하는 길

박: 최근 첫 신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신데, 이 작업에 대한 화두, 관심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최: 저희가 계속 목조건물의 이미지로 덧입혀지는 것이 싫은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어쩌면 저희는 모더니스트입니다. 건축가들이 흔히 하는 포지셔닝, 즉 생존의 전략이 아니라 건축가의 가치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희는 모던의 세상을 이루는 것이 꿈입니다. 그 비전이 폐기되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저희 사무실의 위치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버스 대중교통이 다닌 길이거든요. 서울보다 앞섰죠. 1920년대, 한강 이남의 최초의 가로등이 세워진 곳이기도 하고요. 여기가 경상도의 근대화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일제 강점기 시대에는 가장 모던한 거리였고, 해방 후에는 공구골목으로 성장하여 대한민국의 공구 시장을 지배했던 곳입니다. 그런 배경으로 이 곳에 사무실을 열었습니다. 수많은 모던의 가치 중에 저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산업과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들에게 잉여 시간을 가지게 해주는 것이거든요. 그런 시간들을 통해 삶의 퀄리티를 높이고 사색하는 사람의 삶을 저희가 설계하는 건축환경으로 이룩하고 싶습니다. 모던의 여러 가치 중에 이런 가치를 가장 사랑합니다. 저희는 건축행위를 할 때 그런 관점에서 많이 보기 때문에 사람과 시간의 틀 안에서 사고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집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풍요롭게 만들어 줄까 하는 것입니다. 기능이 충족된 기밀한 집을 짓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 관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사무실에서 진행하는 신축 프로젝트는 주변 맥락이 없다시피 한 전원에 기존 건축주의 집이 있고 이번에 멀리서 찾아오는 동생네들을 위한 작은 집과 카페 그리고 연회장의 프로그램을 갖는 프로젝트입니다. 신축 건물의 건축 개념이라고 한다면, 기존의 집이 있고, 그 안에서의 조망을 새로이 짓는 건물로 가리지 않는 것, 그래서 새로운 건물이 오브제적인 아름다움은 없더라도 옆 건물과의 관계에서는 탁월한, 이렇게 기존의 집을 의식해서 설계하는 것, 그리고 그 사이공간이 비어있지만, 그 공간이 결국 거주자와 방문자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공간이 되는 설계를 진행 중입니다. 기존의 집을 포함한 4개의 각기 다른 기능을 가진 건물 4동이 집합하여 공유하는 공동의 마당이 주요한 목표입니다. 사실 지금 작업이 3, 4주 진행된 단계라 풍요로운 계획은 아직 미비하네요.(웃음)

박: 궁극적으로 꿈꾸는 사무실의 모습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 일단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네요.(웃음) 싫어서 나간다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장소에서 조금 더 많은 사람들과 일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현재는 사무실 여건 상 한 프로젝트에 세명의 소장과 전 직원이 다 붙어서 진행하는데, 나중에 여건이 되면 각자 하나씩, 혹은 듀엣으로. 그런 방식으로 진행하고 싶습니다.

박: 여러 다양한 이야기 나눌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관점과 다양한 지역에서 꾸준하게 작업하고 있는 모습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며 또한 기대되는 첫 신축 건물에 대한 기대도 하게 됩니다. 앞으로 더 좋은 모습으로 오피스아키텍톤의 행보에 관심을 가질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인터뷰어 : 박창현
정리 : 정연재, 김승택
날짜 : 2015년 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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