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2.3144.3133
60 Jandari-ro, Mapo-gu, Seoul

http://aroundarchitects.synology.me/files/gimgs/th-102_DSC06454.jpg

우지현, 차상훈, 최영준_오피스아키텍톤

우지현은 1980년 경상북도 하양 출생으로 계명대학교와 한양대학교 건축대학원에서 건축을 그리고 네덜란드 베를라헤 인스티튜트에서 도시건축을 전공하였으며, 2007년 이후 정림건축을 거쳐 로테르담 OMA에서 실무를 경험하였다.

차상훈은 1977년 대구 출생으로 대구공업고등학교와 호산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였으며, 2000년부터 13년 동안 대구 지역 안에서 건축실무의 기회를 가졌다.

최영준은 1977년 대구 출생으로 계명대학교와 네덜란드 델프트공과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였으며, 2008년 김영준도시건축에서 실무 경험 중 제6회 김중업 건축상을 수상하여 파리 LACATON & VASSAL ARCHITECTES에서 인턴사원으로 근무하는 기회를 가졌다.

오피스아키텍톤은 오늘날 범람하는 디자인의 수사(rhetoric) 속에서 정확한 공간설계로 차별화하여 건축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사무소이며, 실천된 프로젝트로는 유행에 따른 내부 인테리어 디자인을 넘어 오래된 건물의 원형과 장식을 재해석하는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들이 있다.


지금까지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건축가들과 이야기를 나눴었습니다. 이번에는 한국의 지역에서 꾸준하게 작업해 오고 있는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부산과 대구를 들렸습니다. 이번 대구에서 인상적인 작업들을 진행하고 있는 ‘오피스아키텍톤’과 함께 지역에서 작업한다는 것에 대한 내용과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나눠 보았습니다.


대구에 대한 시선

박: 일본의 경우 동경이나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대도시뿐만 아니라 일본의 다양한 지역 건축가들도 활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지역 건축가들이 동경이나 오사카로 가서 활동을 하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라는 분위기 입니다. 이런 일들이 거의 의식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한국은 아직까지 활발하게 움직임이 보지는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구라는 지역에서 건축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로서 이 지역의 상황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듣고 싶습니다.

최: 오래 전부터 어떤 도시에 뿌리를 내릴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했었습니다. 대구를 선택한 이유라고 하면, 무엇보다도 대구를 사랑해서 입니다. 저희 세 사람은 이 도시에서 태어나서 오랜 시간을 보냈고 대구에서 학교를 나왔습니다. 저랑 우지현 소장님은 같은 학교, 그리고 차상훈 소장님은 공업고등학교를 나와서 전문대학을 나왔고요. 대부분의 시간을 대구에서 보냈기 때문에, 대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합니다. 하지만 한 도시에 뿌리를 내리는, 그 중요한 선택을 그렇게 단순히 결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저와 우지현 소장은 서울에서 실무 경험을, 공부는 네덜란드에서, 심지어 우지현 소장은 네덜란드 OMA에서 실무를 2년 더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에서 사무실을 하는 이유는, 저희 나름의 전략적인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건물이 땅 위에 지어지는 것은 불변입니다. 건물을 짓는 비용은 결국 토지 가격과 건축비의 합산인데, 독특한 공법의 건축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건축비는 결국 비슷합니다. 결국 토지 가격이 가장 중요한데, 서울과 지역의 가격이 10배 이상 차이가 나요. 그래서 우리는 지역이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희는 주변의 컨텍스트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며 건축 설계를 하기 때문에 건물이 지어지는 도시 그 자체, 도시 안의 작은 마을, 그 속의 작은 골목길 같은 주변 환경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희가 30년 가까이 생활해오며 이해하고 있는 이 지역이 가장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했습니다.

박: 실제로 두 분의 경우 외국에서 생활을 하고 다시 귀국한 상황인데, 반대로 여기 대구에 그 자리 계속 있었던 경우는 의식적으로 그런 것들을 찾아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익숙하기 때문에 다른 곳과 이 곳의 어떤 부분이 다른지에 대해 찾아내기 힘들다고 생각됩니다. 차상훈 소장님은 계속 대구에 계셨기에 기간이 얼마나 됐든 외국에 있다가 다시 대구에 돌아오신 최영준, 우지현 소장님과는 다른 시선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차: 저는 실무를 대구에서 한지 13년 정도, 다른 두 분보다 먼저 졸업을 하고 군에 다녀와서 취업을 했습니다. 이런 제가 느끼는 점은 회사에 오는 일들의 스타일이나 방법들이 너무 똑같고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10년 넘도록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접했던 일과 나중에 접했던 일들이 주거에서는 원룸과 아파트, 그 속에 다른 것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어요. 저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음에도 계속 반복적인 일들 만을 했었죠. 해외에 다녀온 친구들이 보기에도 그렇게 크게 변한 것은 결국 아파트 높이만 높아진 것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 7년 정도 타지 생활을 한 후 객관적인 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타자의 시선을 조금 견지하기도 한 것 같아요. 저희가 귀국한 2011년도의 상황이 경제적으로 다들 어렵다는 거에요. 서울을 단시간에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이 발달하다 보니 고급 기술의 소비 행태를 가진 분들은 서울을 많이 가시더라고요. 더욱이 건축에 관련된 좋은 일들에 대해서는 소비자가 서울을 찾아가 버리니까 더 심했어요. 심지어 소비자들은 지역에 있고 서울의 건축가를 불러오는 경우도 비일비재 했죠. 저희가 유학을 떠나기 전에는 그런 것들에 대해 잘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들 때문에 대구에 계셨던 분들이 어렵다 어렵다 하셨어요. 하지만 저희는 그런 이야기를 듣다가 실제로 와서 부딪혀 보니 그 틈에서 오히려 기회와 가능성들을 많이 찾았습니다. 이 사무실의 위치와 건물을 정한 이유도 어려운 경기 속 임대가 되지 않아 비어 있는, 그래서 임대료가 월 25만원의 저렴한 가격에 5년 장기계약을 했습니다. 그런 건물들이 대구 도심에 굉장히 많았어요. 그렇게 생긴 기회비용을 이 건물을 리노베이션 하는데 과감히 비용을 지출했고, 이런 것들이 저희의 선순환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첫 출발이 되었던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주변 상황이 어려웠다는 것이죠. 그리고 좋은 정보라든지, 교류, 공론의 장이 일어났을 때, 교통수단의 발전, 그리고 통신수단의 발전으로 그런 것에 참여하기가 더욱 수월해 진 거죠. 서울에 있어야 된다고 하는 장점이 많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좋은 여건이라고 생각이 되요.

우: 저도 마찬가지로 타지 생활을 계기로 객관적이지는 않지만 다른 시선에서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경우 서울과 외국에서 실무를 하면서 꼭 한국과 외국, 나의 고향과 그렇지 않은 곳, 이런 것을 떠나서, 건축가는 결국 본인의 것을 창조하려고 하고 창조된 것이 남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세계 어디서나. 귀국해서 봤을 때, 밀도가 높은 서울에서는 더욱 그런 식으로 작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더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대구는 템포도 늦고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완결되지 못한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천천히 자신만의 건축을 찾아가면서 깊숙이, 오롯이 건축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장소이기도 한 것 같아요. 서울과 같은 경쟁이 심한, 밀도가 높은 곳에서 작업을 시작했다면,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없었을 것 같아요.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가 더 강했을 것 같아요. 게다가 여기가 지역이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점은 저희가 여기서 몇 십 년 살았고, 그래서 저희 지역에서 알고 있었던 사람들, 특히 시공 관련하여, 작업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시간은 조금 더딜지라도 완성도를 만드는 단계에서는 저희한테는 훨씬 더 유리했던 조건인 것 같아요. 장소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박: 지금 이야기 하신 것들, 전반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느꼈던 것들 중 하나인데, 서울에 있는 젊은 친구들을 인터뷰 하다 보니 느꼈던 것이 '초조함' 이었어요. 경쟁 때문에. 그리고 경제적으로 힘들다 보니 빨리 안정적으로 되어야겠다는 마음의 초조함이 실제 인터뷰에서도, 그리고 작업에서도 나타났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은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준비가 안된 상황에서 '빨리빨리 뭔가를 해내야지' 라는 생각은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빨리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이 앞서다 보니 거기에 따른 문제들이 생기고, 갈등도 생길 수 있죠. 그와는 반대로 현재 이 지역의 물리적인 상황과 시간, 확보할 수 있는 상황과 장점을 충분히 잘 읽고 진행하시는 것 같습니다.

최: 말씀하신 상황에 대해 지역은 굉장히 자유로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종건 교수님이 말씀하시던 생존주의 건축에 굉장히 공감합니다. 경쟁이 치열하다기 보다는, 사람이 많은 곳에 계시는 분들은 자기를 드러내는데 굉장히 노력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세계의 건축 거장들에게 볼 수 있다시피, 초기의 작업들이 굉장히 중요한데, 우리나라의 수도권 건축가들은 자기를 드러내는데 시간을 너무나 많이 들이는 것이, 너무나 눈에 많이 보였습니다. 잡지로 노출시키려는 노력들뿐만 아니라 SNS상 활동들. 놀라워요. '저분들이 그런 시간이 다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죠. 실제 설계하고 직접 시공하고 실시간으로 사진을 찍으며 기록으로 남기는, 그런 시간들이 충분할까요? 좌담, 모임, 건축계 활동 다 하시면서... 그리고 이 지역의 또 다른 장점은. 가만히 있어도 잘 드러날 수 있거든요.(웃음)

박: 인터뷰 전에 프로젝트들을 한번씩 다 봤는데, 보고 느낀 점은, 굉장히 시간을 들여서 섬세한 결과들이 많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섬세하고 세세하게 작업 진행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우: 섬세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시간이 많으니까(웃음).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할애할 좋은 기회를 이 지역에서 사무실을 오픈 함으로써 얻은 거죠. 설계기간이 다른 사무실보다 길다는 점을 저희는 자부하기도 합니다.(웃음)

박: 그런 부분은 장점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수도권에서는, 시간을 충분히 들여 설계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됨에도 불구하고, 상황에 의해 이렇게 됐다고 이야기하면서 자기 의지와 상관없는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해 나가는 친구들도 있더라고요. 지금 이야기 하셨던 시간과 작업을 잘 연계해서 이끌어 나가는 방향에 대해서는 저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건축 환경

박: ‘오피스아키텍톤’에서는 최근 리노베이션 프로젝트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구의 다른 분들 역시 리노베이션 작업이 많은가요? 아니면 ‘오피스아키텍톤’ 만의 상황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건가요?

최: 대구에서 리노베이션 작업의 기회는 많이 없습니다. 심지어 대구의 리노베이션 작업 조차도 서울에서 와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만의 상황이라 생각되어 지기도 하네요.

우: 그 이유는 수도권과 지역의 열 배 넘는 땅값의 차이가 있어 굳이 안 고치세요. 부수고 다시 지으시거든요. 그에 따른 시간, 자본의 손실이 적거든요. 그리고 또 서울만큼 신축 작업이 진행되지도 않고요. 서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의 개수가 적기도 하고, 거기다 굳이 리노베이션을 택하지 않는 분들이 많죠.

박: 지금 작업하셨던 것들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것인가요? 북성로와 그 주변은 오래된 건물들이 많고, 중구는 그런 것들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 것들과 이 사무실의 위치가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실제로 리노베이션 작업들이 이 동네의 특수한 환경인 것으로 한정될 수 있나요?

최: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동네건축가를 지향하지는 않고요.(웃음) 한국에서는 인구 100만 이상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곳이 많습니다. 가장 전형적인 곳이 부산이라고 생각하는데, 부산은 역사가 100년 정도밖에 안됐거든요. 대구는 우리나라의 손꼽히는, 서울과 평양과 함께 견주는 고도시 입니다. 역사가 너무 오래됐기 때문에이기도 하고, 한국전쟁에서 피해를 안받은 도시이다 보니 건축 자산이 많을 수 밖에 없는 도시에요. 또 저희 사무실 같은 건물도 그렇습니다만 일제 강점기 건물인데, 일제 강점기 시절 가장 번화했던 도시이기도 하죠. 그 당시만 해도 대구는 글로벌 도시의 반열에 올라 있었습니다. 한 예로 대구의학전문학교는 일본이 우리나라에 만들었던 3개의 근대 의과대학 중 하나이고요. 저 학교를 졸업하면 일본 식민지뿐만 아니라 일본 내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의사 면허를 줬어요. 그러다 보니 이 학교의 입학 시험을 칠 때 당시 대구 도시 인구가 3만이 조금 넘었는데, 시험을 치러오는 학생만 만 명이 넘었으니까. 굉장히 세계화된 도시였어요. 저희가 생각하는 대구는 낙후된 도시, 침체되어가는 도시가 아니라, 오랜 시간의 켜가 녹아져 있는 고도시라 생각하고, 물리적인 건축 자산뿐만 아니라, 비물리적 수준도 분명히 높다고 생각해요. 지표로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설명을 드리자면, 건축사 수가 부산보다 대구가 더 많거든요. 일이 많다는 거에요. 클라이언트도 굉장히 많고. 서울 강남에 땅부자들의 절반이 대구경북 출신이라는 말이 있어요.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에 상당히 많은 기업들이 대구에서 서울로 진출 했어요. 이름만 대면 아는 회사들의 고향이 대부분 대구인 것들이 많죠. 삼성 역시 그렇고요. 지금도 자존심을 가지고 기술 개발에 힘쓰는 회사 중에 대구에 근거지를 두는 회사가 많습니다. 그런 것들이 총체적인 건축 자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리노베이션이라는 것도 껍데기만 바꾸는 게 아니라면, 물리적인 것들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비 물리적인 요소도 많이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리적 자산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자산도 상당한 대구는 그래서 굉장히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하고요. 한 예로 단위행정구역에 가장 한옥이 많은 도시가 서울이 아닌 대구인 걸 들 수 있죠. 이렇듯 대구는 경제적으로 저 평가 되어 있는 가치가 숨어있다는 점에서 저희 나름의 전략으로 저희가 이 지역에 사무실을 오픈 한 이유도 있습니다. 이와 연관되어 저희가 취하고 있는 다른 전략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이 있네요.

현재 보편적인 디자인이 광범위 하게 대한민국을 강제하고 있습니다. KCC라는 회사가 인테리어까지 한다고 했을 때 대중들은 건축가들보다 기업을 더 선호하는 추세입니다. 보편적인 디자인의 유행이 광범위하게 전국을 다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현재 건축디자인이라는 것도 너무 보편적, “보편적”은 좋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편중 되어 있어요. 여기서 차이를 가져야 가치를 부여 받는 것이 건축을 포함하는 고급예술의 속성인데, 그래서 취하는 전략이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잖아요. 이런 추세, 새로운 것들이 너무 많이 만들어지는 사회에서라면, 오히려 옛 것을 그냥 들추어 내는 것이 굉장한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오피스아키텍톤 사무소' 프로젝트를 통해 더욱 피부로 와 닿았습니다. 한 예로 이 건물의 정면 파사드는 저희가 디자인 한 것이 아닙니다. 군사 정권의 근대화시기에 다들 옛 인습을 타파하고 모든 것을 근대화 하는 것이 보편적 사회 분위기일 때, 이 건물과 같은 '박공 지붕은 구시대 적이고 평지붕이 근대화의 상징이다' 라는 인식 때문에 건물의 정면 파사드를 사각형으로 높이고 대형간판으로 박공지붕을 가렸었죠. 저희가 한 것은 그저 근대화 시기에 평지붕으로 보여지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덧대어진 파사드와 간판을 떼어낸 것뿐이에요. 80년 전의 입면 상황을 그저 드러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물론 의도하고 시작한 것이지만 공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언론이나 학자들이 다 찾아왔던 것이 저를 굉장히 놀라게 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주변에 5개의 작업을 받았죠. 최근 일본인 방문센터를 하고 있고요.

박: 그 다섯 개의 작업들은 다 개인 클라이언트인가요?

최: 개인 클라이언트인데 지자체로부터 여러 형식으로 지원금을 받는 클라이언트입니다.

박: 제가 생각하기에는 리노베이션과 관련해서, 지자체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잖아요. 행정적으로, 정책적으로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 그들과 저희는 정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리노베이션을 통해 건물의 가치가 오래 가려면, 근본적인 뼈대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런 것들에 대해 비용도 써야 하는데, 지원금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지자체장의 정치적 행위의 수단이라, 이것이 홍보적인 효과가 있어야 하고 치적으로 남아야 하는 까닭으로, 미디어에 노출이 되었을 때 아름다운 그림이 되어야 해요. 그러다 보니 지원금을 외부 노출 부위에만 지원해 주는 거죠.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리노베이션이 외관 위주의 작업으로 가요. 저희가 말하는, 파사드를 덜어내는 작업이 아니라 덧 씌우는 거죠. 다른 지역의 경우, 구룡포나 인천도 근대골목 사업을 하는데, 콘크리트 라멘 구조의 현대식 건물에 목조장식을 붙이는 경우도 있었어요. 기와의 물매가 거의 뭐 82도의 장식에 가까운 리노베이션 이었습니다. 저는 충격 받았어요. 대구의 경우, 그런 방식보다는 진화된 방식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홍보나 치적으로써의 리노베이션이라는, 근본적 가치관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저희가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비주얼적인 언론, 영상이나 신문과 같은 언론에 노출되는 것 역시 극도로 꺼리고 있습니다.

우: 대구 중구에서 리노베이션 사업을 추구하고 있어서 얼핏 보면 저희랑 굉장히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작업을 참여하기도 했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구청에서는 단순한 복원이나 노스텔지어를 자극하는 사업을 많이 해요. 파사드, 창을 교체할 때 들어가는 새로운 목재에 옛 느낌을 내기 위해 칠을 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죠.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라든가 전체 진행 방향이라든지 확연히 저희랑 다릅니다. 저희는 복원이 아니라 다음 한세기를 지속할 수 있는 영속성을 현대의 기술과 접목시켜 미래 지향적일 수 있는 전략을 추구합니다. 노스텔지어, 복원과는 다른 길이죠. 이미 건축 기술이 선진화 되어있고 발전 되었는데 굳이 우리가 이 시점에서, 새로 고치는 단계에서 왜 옛날의 목창호와 단열도 안 되는 기와를 쓰는 방법을 그대로 차용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죠.

박: 오피스 아키텍톤에서 하는 작업과 대구 중구에서 하는 내용과 겹치는 부분이 있고, 하지만 내용과 방향이 다른 상황에, 서로에 대한 불만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최: 첫 번째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법률적 다툼입니다. 지자체장의 정치적인 행위에 속한 사업이잖아요. 그러니까 현실과의 괴리가 굉장히 많습니다. 예를 들어 250만의 대도시에 건축행위를 하려면 굉장히 많은 법적 제한을 가질 수 밖에 없잖아요? 특히 주거환경개선사업에 대한 것들입니다. 거기에 얽힌 이해관계, 주거환경개선지구, 조합설립준비위원회에 대한 것들.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한다고 하지만, 부동산 자본과 결탁되어 있거든요. 예를 들어 중구는 인구가 점점 줄어들어 공동화가 진행되어 있어 인구 유입이 필요해요. 여기에 저희가 주택 대수선 인허가를 받으려고 하니까 주거환경개선 정비예정구역으로 묶여있으니 이 건물을 고치고 싶으면 조합설립준비위원회에 가서 허락을 구해오라는 거에요. 이건 어느 법령에도 없는 내용이거든요. 지자체에서는 근대골목길 사업 등 도시재생을 추구하면서, 총체적인 도시 재개발을 원하는 위원회에 가서 허락을 구하고 오라니. 너무나 상반되는 가치이므로 사회적 협의가 이루어져야 하잖아요? 그리고 대학 교수로 구성된 수많은 도시, 건축관련 위원회가 이런 문제들을 바꾸는데 노력을 들이고 담론을 생성 해야 하는데, 그분들 조차도 이런 사업을 전시적으로 하고 계시고, 제도적 개선 노력을 전혀 안하고 계시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결국 지자체에서 지원받는 사업만 진행이 되지, 일반사람이 내 돈 들여 하는 건 잘 안 되는 거에요. 너무나 많은 법적 제한, 그리고 이런 현실적 이유들 때문에. 저희가 하는 것은 이런 문제에 부딪혔을 때, 크게 이슈화 시키는 거죠. 저희끼리 공무원이랑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라고 동네방네 광고하고 다니는 거죠.

박: 중점적인 내용을 좀더 공론화 시키고 이슈화 시킬 수 있는 환경은 구비 되어있나요?

최: 리노베이션에 관심을 가지는 일반 대중들도 있고, 건축가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호소하는 방법은 결국 퀄리티입니다. 문제들이 해결 되었을 때 결국 질 좋은 건축을 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요. 하지만 지자체와의 다툼을 이슈화 시키는 것 만이 아니라, 건축가로서 행정업무의 코디네이터로 참여하기도 하고 직간접적으로 행정과 건축에 관계를 하고 있습니다.

우: 저희가 어쨌든 건축가라는 전문인이니까 제가 배운 전문적 기술과 지식에 반하거나 그 기준을 두고 봤을 때, 잘못된 것은 이야기 하는 편이고 그래서 긴장관계라고 하는 것이 형성이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큰 틀에서의 방향은 찬성하고 참여합니다. 잘못되는 문제가 생겼을 때 전문가로서의 조언이나 답을 합니다. 하지만 지자체에서 싫어하시는 거죠. 좋은 게 좋다는 말로. 한국에서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에요 좋은 게 좋다는 말, 그리고 사람이 왜 이렇게 융통성이 없냐는 말. 그건 융통성이 아니라 기준이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기준이 있으면 기준에 적합하게 작업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차: 하지만 최근 지자체도 저희 때문에 그런 건 아니겠지만, 초기의 많은 부딪힘과 비교했을 때, 감사를 받더라도, 지적을 받더라도, 법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완화해 주겠다' 라는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숨통을 틔워주고 있는 부분이 조금씩 생기고 있습니다. 지자체에서도 무조건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융통성을 가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몇 년 전부터 법률을 정비하고 있다고 계속 말로만 하셨지만, 퀄리티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좋게 받아들여 집니다.

박: 변화가 있다는 자체가 큰 변화인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 제도적인 문제, 형식적인 문제들이 안 맞거나 틀어질 수 있는 상황이 자주 있습니다. 그런 부분이 있을 때, 우리들이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후배 건축가들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냐에 대한 갈림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인터뷰 하면서도 사회적 책무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의식에 대한 것들을 자주 질문 했었죠. 사실은 지금은 힘들다 할지라도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미래의 후배들에게 좋은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