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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과 표현방법

박: 그렇다면 윤소장님의 작업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다른 요소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윤: 저는 실제로 건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현상’ 때문입니다. 아까 흐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흐름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빛도 지나가고 소리도 지나가고 사람의 동선과 시선도 지나갑니다. 이것들을 어떻게 조직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공간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대청동 주택의 경우 좁고 긴 땅에서 우리가 어떻게 다층적인 공간을 만들어내는가. 주변과 연관을 어떻게 맺는가 하는 것들은 현상과 관련된 것입니다. 이것은 한 순간에 관찰되는 것이 아닙니다.

박: 지금까지 이야기 하셨던 내부의 현상에 대한 부분들이 다양하게 또는 다르게 표현될 수 있고 실제로 그것들이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신 것 같은데요. 제 생각에는 그것에 대한 관심이나 스터디는 다른 건축가들도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그것들을 왜 하고 있으며 최종적으로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저는 그것이 궁금합니다.

윤: 그것은 단순한 것 아닐까요? 그것은 건축을 떠나 우리가 왜 사는가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행복하기 위해서죠. 말은 쉽지만 과정이 문제입니다. 사회맥락적 측면 혹은 가족 구성원 안에서의 측면, 이런 것들을 조율하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가족 간의 관계가 소원하면 건축가는 어떻게 하면 가족들끼리 좀 더 대화가 많아지고 많은 일들을 함께 하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단순히 집이 좀 더 넓고 좁고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적 구조에 관한 것입니다.

박: 실제로 그런 것을 통해 내부 구성원들의 삶이 컨트롤되고 바뀔 수 있다고 보십니까?

윤: 그렇습니다.

박: 그렇다고 하면 과거에 하셨던 구체적인 프로젝트들에서 어떤 방법을 통해 구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윤: 성동동 경주주택의 경우를 보면 층고 차이나 집 전체의 관통성이 있고 특이한 것은 집의 로터리 공간에는 바가 있는 것입니다. 바가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앉아서 대화할 때의 마음가짐과 서서 지나갈 때의 마음가짐은 다르기 때문에 그런 중간적 공간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공간은 입체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만 우리가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2차원의 평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박: 그렇다면 그렇게 윤재민 소장님이 의도하는 내용들이 실제로도 연결되어 잘 작동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윤: 100%는 아니지만 보통 의도가 되고 소통이 되고, 공간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원래 우리의 설계 자체가 현상 위주의 설계이고 공간 위주의 설계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설계하는 것은 그것과 관련된 시간입니다.

박: 시간 말씀이십니까?

윤: 그렇습니다. 실내 공간이 왜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결국 잠을 잘 시간이 필요한 것이지요. 밥을 먹는 장소는 곧 밥을 먹을 시간이 필요한 것이지요. 결국 액티비티에 모든 것을 집중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프로그램에 민감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가 진행하는 호텔의 경우 단순한 호텔이 아닌 소셜 엔터테이닝 리조트입니다. 기존의 서비스는 가면 일방적으로 받는 서비스이지만 이것은 양방향 서비스를 서로 제공하는 새로운 시스템입니다. 일반적인 경우 호텔은 잠자는 객실이 메인으로 있고 부대시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부대시설이 주가 되고 객실이 서브하는 공간이 됩니다.

박: 그렇다면 거기서 주와 부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윤: 호텔은 잠자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능입니다. 나머지는 전부 부수적인 것이 됩니다. 잠을 못 잔다면 그것은 식당이지요. 그런데 거기서 기능을 어디에 무게를 둘 것인가? 엔터테이닝 리조트라는 것은 사람들이 모이게 만들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미팅을 하고 먹고 수영을 하고 이런 시간의 파티션을 만듭니다.

박: 어쩌면 그러한 것들이 주택을 포함한 다른 다양한 기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예전에 방이 크고 거실이나 부엌이 더 접근하기 어려웠던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사용자의 라이프 스타일이 서서히 변화되고 있고, 시간이 지나서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변화가 생겨 있습니다.

윤: 주택에서는 전통적인 우리의 생활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안방에서는 밥도 먹고 잠도 자고 공부도 하고 많은 활동을 하다 보니 커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60~70대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안방은 커야 하고 거실에는 장식용 소파도 있어야 하고 이런 고정관념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놓고 정작 TV는 자신의 방에 가서 보게 되니 아파트 생활과 전혀 맞지 않는 생활을 하는 셈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진정한 거실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합니다. 사실 거실이 잘 쓰이도록 만들려면 안방의 크기가 작아야 합니다. 아늑하게 잠만 잘 수 있는 공간을 주어야 하고 또 쾌적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빛과 환기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이런 그렇다고 모든 방들을 좋은 위치로 줄 순 없으니 그것들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거기서 건축의 미묘하고 섬세한 부분들이 만들어진다고 봅니다.

박: 구체적으로 주택을 진행하시면서 현상과 관련된 표현 혹은 구현을 하고 계신데요.

윤: 현상에는 물리적 현상과 사회적 현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건축가는 창을 하나 뚫어도 사회적 현상으로 직결됩니다. 볼 권리나 조도, 다른 공간과의 관계 등등. 관계라는 말 자체도 이미 사회적입니다.

박: 그런 부분에서 윤소장님의 성향 같은 것이 작업에서 나오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건축에서 전달하려는 내용이 일관된 소장님의 방식이 있는지 아니면 클라이언트에 따라서 다른지 아니면 취향에 따라 달라지는지...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진행하셨던 주택들의 담장 같은 경우 대지 경계를 따라 이어지는 담장이 꽤 많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주변의 환경에 따라서 나타나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의 작업에 비해 좀 더 두드러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담장들이 형태도 다르고 높이도 다르고 비교적 시야보다 높은 높이의 담장들이 계속 유지되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윤: 그 부분은 정확히 사회성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회성이라는 것은 첫째는 건축주의 성향이고 둘째는 지역사회의 성향입니다. 판교의 경우 담을 쌓지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많은 주택들이 1층 공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모릅니다. 거실을 두긴 하지만 애매하게 이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것들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특히 경주지역은 담을 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주변 맥락이 거의 담으로 이루어진 상황에서 하나를 헐고 다시 지어도 그 건물은 담들에 둘러싸여 있는 상황입니다. 제가 담을 쌓지 않아도 이미 다른 집에서 담을 쌓고 있는 상황인 것이지요. 그리고 담이 사선인 것은 그 옆의 형태가 그렇게 생겼기 때문에 그것이 반영된 것입니다. 기존의 담이 사선이고 옛날에 있던 기와지붕을 따라 담을 쌓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형태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흔적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성향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것은 맨 마지막에 들어갑니다. 만약 우리가 기존에 나와 있는 것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설계를 하게 되면 건축가 혹은 건축주의 인위적인 욕망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파악하는데 주력하기 때문에 역량이 안돼서 다 파악을 못할지언정 최대한 객관적으로 하려고 노력합니다. 모든 컨디션들을 분석해서 객관적으로 타당한 이유를 통해 만들고 나중에 면을 정리할 때는 건축가의 조형적 성향이 살짝 들어갑니다. 때문에 나머지 과정은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고 누가 해도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박: 담과 건물과의 연결고리에는 어떤 내용들이 있습니까?

윤: 특별한 연결고리는 없습니다. 담은 어떤 경우는 건물의 확장개념으로 사용합니다. 조경가는 건축을 조경의 연장으로 봅니다. 건축은 조경을 건축의 연장으로 봅니다. 저는 석사로 조경을 전공했습니다. 저는 담의 경우 건축의 연장으로 봅니다. 그리고 건축은 조경의 연장으로 보기 때문에 주변의 컨디션에 따라 형태가 정해지는 것입니다.

설계와 시공의 간극

박: 한국에서 건축을 하시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윤: 어려운 것은 좀 전에 박소장님께서 이야기 하신 것과 같이 건축가가 너무 많은 것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프랑스 이야기를 했었는데 또 다른 측면을 살펴보자면, 우선 프랑스는 시공사를 별도로 지정하지 않습니다. 이미 실시설계 나가면서 업체들에 배분이 됩니다. 건축가는 그 업체들로부터 창호도면 받고 구조도면 받고 설비도면 받고 해서 취합도면을 만듭니다. 그 도면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실수가 거의 없습니다. 반면에 한국은 건축 적산이라도 뽑으면 다행입니다. 도면 몇 장으로 계약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것들 때문에 애초에 이야기와는 다르게 금액이 계속 올라갑니다. 그 과정에서 모두 피해를 보는 것 같은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시공사는 손해 봤다고 하고, 건축가는 일의 양이 늘어서 손해 봤다고 하고, 건축주는 공사비가 늘어서 손해 봤다고 하고 모두 다 피해의식을 가지고 끝납니다.

박: 그렇다면 그런 불합리한 것들을 어떻게 헤쳐나가고 계십니까? 매번 시공 현장에서 봐왔던 모습 일 텐데, 광주에서 잠깐 언급하셨던 도면을 많이 그리거나 혹은 자세한 내용에 관한 것들을 철저히 준비해서 내놓는다는 것들은 개인적으로도 공감하는 내용인데 그런 것과 함께 또 다른 윤소장님의 방식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윤: 모든 것은 도면으로 집중됩니다. 도면은 건축가의 바이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관리를 꼼꼼하게 한 프로젝트들은 현장에 자주 안 내려가도 됩니다. 자주 나가지 않아도 현장이 저절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만약 도면이 잘 되어 있다면 시공에 뭔가 문제가 생겨도 도면대로 하라는 말 한마디면 됩니다. 하지만 건축가가 원하는 도면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경우는 문제가 됩니다.

박: 도면에 대한 부분들이 잘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현장 상황에 따라 그대로 안 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윤: 그런 것들을 다 감안해서 하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현장에서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초반에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발생할 수는 있지만 도면만 제대로 되어 있다면 자잘한 문제들은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건축적 해석에 대한 견해

박: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자신은 도면을 통해서 적절히 공간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시공되는 현장에 가서 보니 그게 아니더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감리 도중에 수정을 하는 경우가 발생하곤 하는데 윤재민 소장님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윤: 그것은 사실 내공의 문제인데 설계가 명확하면 예상대로 나옵니다. 거실에 적합한 천장고는 얼마일까요? 아니면 거실과 부엌이 만나는 곳의 천장고는 얼마가 적당할까요? 결국 제가 생각하는 건축가의 본연의 작업 중 하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꿈을 치수화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들도 결국 치수화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박: 하지만 공간감이라는 것은 무수히 많은 요소들에 의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형태나 높이도 마찬가지고 개구부의 크기도 마찬가지이고 재료의 형태나 색깔 빛의 위치 방향 등에 의해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이미 계획 전에 그런 모든 요소들을 고려해서 계획을 한다는 말씀이신지요?

윤: 그렇습니다. 제 대답은 표면적으로 100%라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앞으로 그렇게 되려고 노력한다 정도로 받아들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또 그것을 아는 것이 건축가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도면을 그릴 때 그런 것들을 모두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작곡가에 비유하면 한참 작곡을 해놓고 연주가가 연주하기 시작하니까 갑자기 ‘내가 생각했던 곡이 이게 아닌데’ 라고 한다면 안 되는 것 아닐까요?

박: 방금 작곡가에 비유를 하셨는데 실제로 똑같은 악보를 보고도 연주자에 따라서 많은 해석과 다양한 접근의 연주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같은 곡이라도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앨범으로 나오기도 하고 그런 것이 아닐까요? 그런 경우에 작곡가는 어떤 하나의 의도로 작곡을 하지만 항상 그렇게 해석되는 것만은 아니고 또 연주자의 연주에 따라서 관객이 느끼는 감정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음악의 숨겨진 가능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저는 건축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설계를 할 때 이 공간이 어떻게 이용되고 어떻게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계획을 하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지어지는 시공사의 마음가짐 혹은 능력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이 들고 똑같은 공간이라도 쓰는 사람에 따라서도 또 건축가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용될 수 있는 여지들이 오히려 저는 건축의 좋은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윤소장님은 저와 약간 다른 견해가 아니실까 생각이 듭니다.

윤: 아닙니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똑같은 경우로 다르게 해석을 하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연주의 과정과 시공의 과정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연주야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도면에 나와 있는 치수와 재료들을 시공사가 마음대로 해석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도면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겁니다.

박: 저는 아직 그렇게 되진 못했지만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시공자라고 하면 같이 의논해서 제가 그 공간과 기능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을 하면 오히려 시공자가 그것을 듣고 해석을 통해서 공법이나 재료 등을 거꾸로 저에게 추천을 해주고 같이 협의해나가는 것이 오히려 나을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공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돌발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 생길 수 있습니다. 건축주의 심경변화나 그런 것들을 통해 문제가 생겨도 건축주가 그것을 직접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 역할을 저희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윤소장님께서는 건축가의 의도와 계획이 실제 사용자의 사용과 거의 일치된다고 보시는 입장이십니까?

윤: 이 이야기를 잘못 해석하면 건축가가 그린 것에 대해 건축 주는 따라와야 한다라는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는데 제 입장과는 반대입니다. 저희의 작업은 철저히 건축주와 합의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박: 그렇게 합의한 내용이 있다고 하지만 건물이 지어지고 나서 실제로 계획한 기능과 이미지로 건축이 유지되는 내용을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윤: 광주 주택의 경우 자잘하게는 빨래를 널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안 널고 다른 곳에 줄을 연결해 널어 놓는다든지 이런 상황들이 많은데 그것들에 대해서는 상관 안 합니다. 일이 진행될 때도 제가 준 스케치를 팀장이 잘못 해석해서 다른 도면을 그리고 시공사는 또 다르게 해석을 하고 이랬던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본 계획을 다시 다 수정해서 다시 건축주를 설득하고 하는 과정을 거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습니다. 저는 인테리어작업을 많이 했었기 때문에 내부의 제한적인 공간에서 또 다른 공간을 만드는 것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습니다. 외부가 여건이 안 좋아도 내부는 또 새롭게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공간성은 큰 틀에서 나타납니다. 그리고 공간은 물론 개인적인 경험이나 감정에 따라 바뀔 수 있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밀폐된 벽들을 세워 방을 만든다는 것은 결정적인 일입니다. 따라서 이런 것들을 어떻게 조직하는가 하는 것이 건축가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공간 구성에 대한 부분이나 공간과 공간의 관계라든지 현상적인 부분을 통해 내부적으로 조직하는 것에 공을 많이 들이시는 것 같아 작품에 대한 많은 궁금증들이 어느 정도는 해소되는 것 같습니다.

윤: 저희는 형태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안에서 생길 수 있는 가능성들을 형태로 구속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박: 그렇다면 당분간은 재료에 대한 변화보다는 재료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시겠다는 이야기이군요.

윤: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저는 콘크리트처럼 유동성 있는 물질을 굳혀서 단단하게 만드는 이러한 방식은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계속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목조도 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멀리 본다면 추후 저희가 가고 싶은 방향은 기후학적 건축입니다. 프랑스의 필립 람이라는 건축가와 한번 해보려고 준비를 조금씩 하고 있는데 기후학적 건축은 절대적으로 기후에 민감한 건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건축을 또 달리 이야기하면 기후조절 학문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박: 지금까지 말씀하셨던 것들이 나중에 어떻게 작품에서 나타날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도시와 구분되는 부산의 특색이나 관심이 가는 부분 같은 것이 있으십니까?

윤: 간단히 이야기하면 앞서 했던 이야기지만 공간의 개폐여부입니다. 프랑스에서도 따뜻한 지중해 쪽으로 갈수록 공간은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공유합니다. 반대로 파리로 가면 공간은 폐쇄적이 되고 점점 고립된 구조로 갑니다. 도시 조직성에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부산성을 이야기할 때 서울적인 건물을 가져다 놓고 어떻게 부산성을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현 기후와 지역성에 맞는 스터디는 지금까지 진행된 적이 없습니다. 누군가 지역성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 전례가 있냐고 묻고 싶습니다. 근대에 특정 양식이 이입된 것은 있어도 자연스럽게 발전되어 만들어진 것은 없습니다. 물론 전통 마을의 경우에는 남아있을 수 있지만 현재 거의 사라지고 전무한 상황입니다. 그 이면에는 이미 도시화 현상이라는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부산성을 이야기하자고 한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할 수 있냐고 묻고 싶습니다. 지금은 차라리 부산사람의 기질이나 사람들의 생활에서 그 답을 찾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들이 하던 대로 하면 결국 지역성을 만들어내고 다시 그것을 보고 반응하는 시민들의 피드백이 지역성이 됩니다. 지역성은 개별적인 건축가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박: 개별적인 건축가들의 고민에 의한 결과가 모이면 그것이 지역건축의 성격이 형성되는데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긴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어 : 박창현
정리 : 정연재, 김승택
날짜 : 2015년 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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