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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민_JMY Architects

다른 접근의 지역건축 방향을 이야기 하다.

1971년 경남 사천출생으로 1998년 파리 에자트 무대미술 및 실내건축학과와 2006년 파리 라빌레트 국립 건축대학 석사를 하였고 2008년 프랑스 국가 공인 건축사 취득하였다. 1997년 파리 알랭이야르(Alain LYARD) 실내 건축 사무소와 1999 필립 장 (Phillippe JEAN) 건축사 사무소에서 실무를 하였다. 현재 JMY Architects를 운영하면서 2012년 광주주택으로 광주시 건축상, 2014년 5x17 대청동 협소주택으로 건축가 협회상 Best7, 월잠리 주택으로 창원시 건축대상 수상하였다.
http://www.jmy.kr/

건축을 하기까지의 과정

박: 지금까지 여러 나라들의 경우를 보아 오면서 상대적으로 한국 상황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건축가들이 서울에 집중되어 소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좀 다르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다양한 지역에서 건축가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아직은 많이 소개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부분에서는 한국의 건축 잡지에서 좀 더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라는 것도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윤재민 소장님은 지역에 기반을 둔 건축가라는 입장에서 오신욱 소장님과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신욱 소장님이 부산에서 태어나서 계속 부산에서 살아왔고 또 부산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계속 몸으로 겪어온 경우라면 윤재민 소장님은 물리적으로 부산에서 사무실은 하고 있지만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에서 진행이 되고 있기 때문에 조금 다른 경우입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15년 동안 공부를 하면서 부산을 떠나서 지내기도 하셨고 그것으로 인해 일하는 스타일도 다르고 영역도 다르고 환경이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오신욱 소장님과는 또 다른 성격의 지역 건축가로, 부산 건축의 중요한 부분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오신욱 소장님과는 부산의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면 윤재민 소장님과는 작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더 할까 합니다.
우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제가 알고 있기로는 한국의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지는 않으셨고 또 처음부터 건축 공부를 위해 유학을 가신 것도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동안 경험해 온 것들이나 관점, 태도, 그리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 역시 조금 다르리라 생각이 듭니다. 때문에 지금까지 윤재민 소장님께서 건축을 하게 된 과정을 자세히 들어본다면 작업이나 생각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윤: 지금은 지역 건축가가 되어 활동하고 있지만, 지금 지역에 안착하기 전에 많은 과정이 있었습니다. 이력을 보면 어느 정도 요약이 될 텐데요. 원래 미술을 했고 순수 예술을 했고 산업 디자인과 무대 미술, 인테리어도 조금 했었습니다. 이런 미술 방면에 대한 계기는 성장기 환경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저는 성장기 때부터 미술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친구가 우리나라 조각의 거장으로 불리는 문신 선생님의 아들이었고, 저의 고등학교 미술선생님은 지역 미술 평론을 하셨던 오경식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출판업을 하셨는데 마지막 출판 작이 오경식 선생님의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고 전수창 화백의 제자로 일했었습니다. 그래서 앞의 과정을 보면 저는 자연스럽게 미술을 따라 파리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박: 그렇다면 한국에서 대학 진학은 아예 하지 않았습니까?

윤: 그렇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고 전수창 화백의 아뜰리에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때 그곳에서는 버려진 지 30년 된 방앗간을 사서 아뜰리에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화제가 되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주변에 살고 있던 가수 송창식씨나 개그맨 전유성씨, 그리고 그때 당시 현진영을 키우고 있던 이수만씨까지 종종 놀러 오면서 연예인들의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방송계 사람들과 연을 맺으면서 무대 쪽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파리로 유학 갈 당시에는 순수미술을 하기 위해 보자르에 포트폴리오를 들고 갔었는데 그때 고 문신 선생님의 아드님께서 가이드를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너무 열심히 준비해간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되었습니다. 학교에서는 가능성이 있는 ‘학생’을 뽑는 것이었기 때문에 저의 포트폴리오는 지나치게 프로페셔널 하다고 판단을 했는지 합격을 시켜주진 않고 그냥 화단에 나가라는 대답만 들었습니다. 그렇게 떨어지고 곧바로 원래 관심이 있던 무대미술 쪽으로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박: 그 당시라면 한국에서는 아직 무대 미술이라고 하는 분야가 조금 생소할 수도 있는데, 경험해본 소감이 어떠셨습니까?

윤: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특히 무대미술의 경우 무대를 꾸미는 기반은 시나리오였는데 남들은 30페이지 읽을 동안에 저는 사전 찾아가면서 3페이지 읽고 게다가 원어민과는 이해의 깊이도 다르니 게임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실내 건축 쪽으로 전향을 했는데요. 거기서 다시 건축을 하게 되는 계기가 생깁니다. 제가 실내 건축 졸업 작품으로 세느강변에 있던 최초의 콘크리트 건물을 리모델링 했는데 원래 용도는 거대한 창고였습니다. 그것을 한국인 문화원과 기숙사로 리모델링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그 크기가 3헥타르나 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저의 프로젝트는 실내 디자인보다는 건축적 성향을 띌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그것으로 상을 받고 학교장 선생님의 눈에 들어 라빌레뜨 건축학교에 추천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얼떨결에 건축학교에 다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바로 필립 장의 사무실에서 실무를 배웠는데 때문에 졸업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일과 공부를 완전히 병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재미있는 일을 맡게 되면 학교를 쉬고 일을 하고 그러다 다시 배움에 대한 갈망이 생기면 다시 학교에 다니고 이렇게 배움과 실무를 같이 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배움과 경력을 같이 쌓아 나가다가 결국 한국의 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하나 맡은 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으로 귀국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산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

박: 그때부터 그 일을 빌미로 한국에서 계속 일을 하셨습니까?

윤: 그 도시 개발 프로젝트는 중단되었고 저는 아버지 출판사 한쪽 구석에서 책상 하나 놓고 일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부산에서 성장세를 달리고 있던 건축 사무소와 합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저는 원하지 않았던 경험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2년 동안 40여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하나도 시행이 안 되었습니다. 그 과정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겪고 다시 독립을 결심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실 그때 부산을 떠나려고 했었습니다. 저는 부산 출신이지만 시장을 만들기에는 서울보다 부산이 불리했기 때문입니다. 지역끼리 뭉치는 성향이 워낙 단단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이방인이었던 저는 낄 수가 없었습니다. 공모전 같은 것은 절대로 지역 업체를 이길 수 없고 수주 역시 문제였습니다.

그때 중요한 일이 하나 있었는데 일본에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하고 부산에서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했을 때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두 나라를 왔다 갔다 하면서 고생스럽게 두 프로젝트를 끌고 가고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신경을 못 썼던 일본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잘 진행이 되었고, 부산의 프로젝트는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그러면서 두 나라의 현실을 체감하게 된 것이죠. 그때부터 주변의 문제들에 대해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건설 계나 건축가 집단이나 지역이나 여러 분야에 대한 문제점들을 살펴보면서 서울로 무게중심을 옮기기 위해 홍익대학교에 강의까지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들어온 광주 주택이 도화선이 되어 서울로 옮기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부산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박: 개인 건축가 마다 상황은 좀 다르겠지만 첫 프로젝트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중요한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갑자기 부산 지역도 아닌 광주에서 프로젝트를 어떻게 처음 맡게 되셨습니까?

윤: 그 때 당시에 공동 대표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저와 같이 하기 전에 프로젝트를 광주에서 한번 진행했었는데 그때 그 시공사로부터 일이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번에는 독자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도 되겠느냐고 하면서 건축주 미팅도 끝나서 결정된 안을 저에게 보여줬는데 저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싹 바꿔서 진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아주 밑지는 상황이었는데 이미 계약 당시에 금액은 정해져 있는 것이고 제가 중간에 마음에 안 들어서 바꾼 것이기 때문에 그냥 진행했는데 문제는 시공사였습니다. 자신들은 절대 손해나는 시공은 안 하겠다고 버티고 있어서 그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Archdaily도 열어서 보여주고 언제까지 틀에 박힌 것만 할 것이냐고 자극도 하고 하다 보니 시공사가 이번에 자신들도 제대로 한번 해봐야겠다고 태도를 바꿨습니다. 결국 세밀한 시공을 위해 콘크리트 거푸집과 기술자를 일본에서 불러와서 시공을 했습니다. 다행히도 일본의 시공사도 한국에 기술력을 수출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서로의 요구가 잘 맞아떨어져서 진행이 된 경우입니다.

박: 일본에서 콘크리트 기술자와 시공을 했다는 상황에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그때 상황이 좀 특수한 상황이라고 생각 되는데 광주 주택을 진행하면서 다른 어려웠던 점이나 아쉬웠던 부분은 없었습니까?

윤: 그 주택에서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내부 인테리어였습니다. 저만 하더라도 외국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내부와 외부가 다른 것은 상상을 할 수 없었는데 저희 공동대표만 하더라도 외부가 끝나고는 딱 잘라서 내부는 우리가 알 바가 아니다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바꿔보려고 나름대로 계속 수정을 거듭해서 해보았지만 결국 10%도 반영이 안 되었습니다. 광주주택에서는 그 부분이 너무 아쉬운 부분입니다.

한국 건축가들이 처한 상황

박: 예전에 숨비 건축의 김수영 소장님과 인터뷰하면서 나왔던 내용 중 하나가 한국 건축가들이 해야 하는 일의 양이 외국과 비교해서 현격하게 많고 결과물은 그것과 반비례하게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외국은 건축 환경 자체가 건축가들이 많은 일을 하지 않아도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가 나올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 있는데 한국은 건축가들이 모두 해야 하고 또 해도 그 정도의 완성도가 나오지 않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건축가들에게 왜 다른 나라보다 못하냐고 질문하기 이전에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렇다는 상황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어쩌면 광주주택의 상황이 우리나라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윤: 여느 건축가나 마찬가지로 느끼겠지만 한국 시장에서는 뭐가 다른 건축을 하고자 하면 결국 원하는 사람이 피해를 보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좀 더 잘 만들어진 것을 하겠다는 의지는 그 사회하고의 싸움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건축계의 구조, 자재시장의 공급, 그리고 건축가 작업 자체에 관한 것들까지 상충되고 조율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프랑스와 상황을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프랑스에는 우리나라에 없는 직업이 있습니다. 바로 프로젝트의 프로그래미스트입니다. 건축 사무소에서 절반은 건축사이고 절반은 건축 프로그래미스트나 행정에 관련된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건물의 규모가 커지면 프로그래미스트가 먼저 프로그램에 대한 조율을 다 해놓습니다. 프랑스 국립 도서관의 프로그램 지침서가 두께가 두꺼운 책이 몇 권이 나오는 분량입니다. 이런 것들을 건축가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박: 프로그램에 대한 분석과 제안이나 방향을 먼저 설정하고 그것에 따라 설계를 진행하는 방식이군요. 반면에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건축가가 그런 프로그램에 대한 부분을 진행 한다면 사실 간단한 용적이나 사용에 대한 이야기 말고 자세한 것들은 조율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윤: 그렇습니다. 그 프로그램 지침에는 양적인 접근과 질적인 접근이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양적인 것은 최저 층고의 제한이나 전시품을 위한 벽면의 면적이라든지 겹치지 말아야 하는 동선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전부 지침에 나와 있습니다. 거의 사전 계획이 이미 한 번 있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건축가가 해야 하는 일은 그런 섬세한 프로그램에 대한 분석을 받아서 한발 더 나가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 제작된 프로그램 지침을 보면 건축가의 상상력을 키워주도록 되어있습니다. 조금만 지침에 힘이 들어가도 이미 프로젝트 전체의 방향이 결정되어 버리기 때문에... 한국에서 제가 학생들에게 항상 하는 질문이 ‘프로그램과 프로젝트의 차이점을 이야기해봐라’ 입니다. 그러면 아무도 대답을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항상 프로그램을 짜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이미 다른 단계에 있는 일입니다. 둘의 관계로 본다면 프로젝트는 프로그램의 대답이 되는 셈입니다.

박: 프랑스에서 프로그래미스트로 일하는 사람들은 주로 무엇을 전공한 사람들입니까?

윤: 50% 이상이 건축전공입니다. 하지만 주로 그것만 연구하다 보니 굉장히 섬세합니다. 심지어 지침에는 주방에 포크세트까지 어떻게 들어간다는 것까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인간공학 같은 여러 가지 분야들이 다양하게 적용될 기회가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박: 그렇다면 프랑스에서 그런 경험들을 하셨지만 다시 한국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 입장에서 그런 차이에 대한 것들을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윤: 아직은 신참 사무실이라 규모를 키우기만 했기 때문에 올해쯤부터는 조금 정리가 시작되는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들어오는 일을 처리하기 바빠서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 현장 다르고 저 시공사 다르고 해서 정리가 안 되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통제되는 느낌이 듭니다.

설계에 대한 관점

박: 과거 각각의 프로젝트들을 진행할 때마다 달랐던 것들이지만 이제는 정리되고 있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눈에 보이십니까?

윤: 일단 재료적인 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안 하게 됩니다. 저희들이 틀에 박힌 계획을 하기 시작해서 시도를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재료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서 계획까지도 포괄하는 내용인데 제가 질문을 하나 해보겠습니다.

계단을 돌 때 보통 왼쪽으로 돕니다. 법규에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고 만약 문을 열었는데 좌우에 방이 있다면 어느 쪽으로 먼저 갈 것 같으십니까? 당연히 이 문제에 답은 없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와 추측들이 있겠지요. 인간의 심장이 왼쪽에 있기 때문에 왼쪽으로 간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고 여러 가지 설이 있긴 하지만... 그리고 방들이 왜 사각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러한 질문을 던진 이유가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가 이어져오면서 성취해온 것들이 굉장히 많은데 우리는 항상 이런 과거의 성취들을 잘 알지도 못하고 항상 새로운 것을 찾곤 합니다. 제 생각은 거기에 있습니다. 기존의 것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한 채 자꾸 새로운 것만 찾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콘크리트만 하더라도 그 사용법이나 잠재력을 잘 알지도 못한 채 자꾸 다른 재료를 발견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 재료를 예로 들어 설명하셨지만 그 부분은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자신이 사용 해야 할 재료에 대한 가능성을 알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좋은 방향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윤재민 소장님은 그러한 과거의 성취를 통해 중점적으로 다루게 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윤: 먼저 다양한 접근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중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의식입니다. 공간을 자르면 시간이 잘립니다. 시간은 잘릴 수 있는 물성을 지닌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방에서 벽을 세워 2개의 방으로 만들면 그 2개의 방에서는 각각 다른 행동이 일어날 수 있고 둘의 시간은 별개로 흘러갑니다. 그렇다면 주택 하나를 설계할 때도 이런 단위세포들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이것들이 어떤 방법으로 엮이고 단절될 것인가. 이런 기본 구성에 대한 스터디를 충분히 하지 않은 채 재료변화만 주게 되는 것이 저는 싫었습니다.

박: 방금 말씀하신 것들을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전의 이야기는 주택의 경우 각각의 실들과 기능이 어떤 식으로 조합되거나 구성되느냐에 따라 재료가 결정된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주택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면 사실 우리가 살아오고 경험해왔던 그것에서부터 아파트까지 그 형태가 쭉 이어진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앞선 환경을 경험했던 사람들과는 달리 처음부터 아파트에서 살았던 기억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전의 환경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에 잘 알 수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만약 그렇다고 하면 윤소장님께서는 주택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과거부터 살아온 사람들의 경험과 생태를 얼마나 의식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윤: 저희는 의뢰를 하러 오시는 모든 분들에게 숙제를 드립니다. 설문지 같은 형식인데 그것을 통해 살아온 환경, 생활패턴, 선호하는 기능과 공간까지 모두 글로 써오도록 합니다. 거기에 가지고 오고 싶어 하는 가구의 구체적인 치수와 사진까지 세세한 기능적인 부분까지 더해서 저희가 조율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박: 일단 이런 설문의 용도는 주택인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면 여러 집에 질문지를 나눠주신 셈인데 각각의 건축주가 요구하는 부분들이 다 다릅니까?

윤: 일단 기본적으로 현재 2015년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지금까지 살아왔던 구조와 멀어질 수 없습니다. 방이 필요하고 거실과 부엌이 필요하고... 그렇다면 거기에 건축가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왜 방에서 자야 하는가? 거실은 왜 필요한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것에 대한 답을 도출했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것들을 주택에서 크게 바꾸거나 형식을 깰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감수성입니다.

박: 방금 말씀하신 감수성을 조절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윤: 건축에서 감수성을 조절하는 것은 결국 흐름과 막으로 정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떤 추상적인 요구건 구체적인 요구건 건축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공간의 개폐를 통해 흐름을 조절하고 벽의 재료를 통해 막의 성격을 정의하는 것이 가장 중심이 됩니다. 금속재를 잡고 어떤 사람은 시원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어떤 사람은 차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똑같은 면적의 공간도 조금 더 열어서 개방적으로 느끼게 할 수도 있고 막아서 내밀하게 느끼도록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간의 관계 역시 긴밀하게 만들 수도 있고 좀 더 자유롭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박: 주택들이 변화되어온 상황들을 보면 각 나라마다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관문을 열면 큰 거실이 보이고 거기서 각각의 방으로 연결되는 구조인데 반해 일본의 경우 현관문을 열면 복도가 있습니다. 그 복도를 통해 실들이 동등하게 연결되고 방은 방끼리 연결되어 하나의 방을 열면 다시 다른 방이 나오는 형태도 있습니다. 이처럼 여태까지 살아왔던 주택의 구성방식이 다 다른데 그 다른 것들을 계속 반복하도록 하시는지 아니면 다른 식의 구성을 만들거나 차용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한 건축가가 설계한 집을 보면 현관문을 열었을 때 가장 내밀해야 하는 침실이 가장 먼저 나온다고 합니다. 침실을 거쳐야만 다른 공간으로 갈 수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것이 좋은가 나쁜가를 떠나 우리나라의 경우 아예 그런 시도도 없이 이미 정해진 틀의 안에서 정리된 건물들이 나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윤: 일단 한국의 경직된 아파트 구조의 경우 서구 모더니즘 이후 유입된 서양의 방식을 한국에 인위적으로 끼워 맞춘 결과라고 생각이 됩니다. 서양의 주택 구조를 보면 거실이 우리처럼 집의 중심공간으로 설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거실도 하나의 실일 뿐이지요. 하지만 이것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한국의 마당 개념과 접목되어 변형된 것입니다. 이 구조의 단점은 거실에 있어도 방의 영향을 받고 방에 있어도 거실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박: 한국 아파트에서는 베이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나옵니다. 그 말은 중심적인 거실 공간을 두고 옆에 얼마나 방을 붙이냐에 따라 바뀌는 것이지 그 구조가 바뀐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 건축의 전통적인 조직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봅니다. 설사 프리폼으로 디자인 한다고 해도 내부에 바뀔 수 없는 부분은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발이 닫고 잠을 자야 하는 곳은 수평이 되어야 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바뀌기 힘든 것이라고 봅니다.

박: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변화가 생기는 부분들이 예전에는 방 중심의 생활이 있었고 그 이후에는 거실 중심의 생활을 거쳐 최근 들어서는 부엌 중심의 생활로 변화되는 모습도 곳곳에서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윤: 사실 서양에서는 수십년전부터 있었던 변화들입니다. 문화권에 따라 다릅니다. 아메리카적인 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럽의 경우 실 중심의 구성이기도 하고 부엌이라는 곳은 안주인이 일을 하는 곳이 아니라 하인들이 잡일을 하는 곳이라는 개념이 강합니다. 따라서 중심으로 올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가족들의 생활에서 부엌이 큰 역할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부엌의 중요성이 건축적으로도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박: 그래서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던 주택의 형식들을 벗어나 새로운 형식을 제시하거나 이런 작업들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윤: 저는 기존에 나와 있는 것만 제대로 사용해도 완전히 새로운 것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쉽게 비유를 하자면 한글의 자모는 26개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조합을 통해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셀 수없이 많습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요소만으로도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때문에 저것들이 새롭지 않다고 또 다른 것들을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