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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경, 최교식_오우재건축사사무소

까마귀 오 烏, 깃 우 羽, 재계할 재 齋

김주경 1972년 출생.서울대학교 건축학 학사,석사를 마치고, ㈜경영위치건축사사무소에서 7년간 재직했다. 2007년 3월 최교식 소장과 함께 오우재건축사사무소를 오픈했다.
최교식 1975년 출생.서울대학교 건축학 학사, 석사를 마치고, ㈜에이텍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6년간 재직했다.2013년부터 이화여대 겸임교수로 있다.
오우재 건축사사무소는 2007년부터 주택,리모델링,도시계획 및 연구용역으로 활동하고 있다.완도 청산도 가고싶은 섬 시범사업으로 2012농어촌건축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이후 청산도에 느린섬 여행학교 Project에 참여했다. www.oujae.com

오우재의 건축

김: 한국의 젊은 건축가인터뷰를 진행하기에 앞서서, 많은 젊은 건축가들 중에서도 오우재를 어떻게 생각하였기에 선택하였는지 궁금해요.

박: 처음에는 적정범위라고 설정한 연령순을 기준으로 한국의 젊은 건축가리스트를 작성했습니다.그리고 대외적으로 건축에 대한발언을 하였거나 자신들의 작업을 미디어를 통해서오픈 하였던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고 싶었습니다.오우재에서작업 했던 몇몇 건물들을 직접 다녀오기도 했었고,제 주변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었기 때문에 궁금했습니다.

김: 솔직히 저희가 대외적으로 뭔가를 하는 것을 많이 싫어해요.2013년에 「젊은 건축가상」을 받으면서 노출이 되었고,사람들이 찾아볼 것을 의식하여 작년에서야홈페이지를 열었습니다. 이전부터 도메인을 사둔 것이 있었지만,계속 공사만 하고 있었어요. 우리의 성격 때문이기도 합니다. 최소장님의 생각과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저희는 자신들이 몰입하여서 재미있게 한 것들을 스스로가 확인할 때가장 흐뭇하고 좋습니다. 단, 그것들이 욕을 먹어야 하는 수준이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적어도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지금까지 건축을 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운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이 아니면 안되었거나 꼭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면 건축을 못했을 것 같아요. 저희는 건축을 대하는 자세가 그렇기 때문에, “사회를 변화시키는 건축” 내지는 “도시의 풍경을 변화시키는 건축” 등과 같은 담론적인 접근들을 경계합니다. 물론 의미가 있는 작업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겠지만 그렇게 접근을 하면 건축이너무나 재미가 없어요. 뭐랄까, 건축의정파는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박: 다른 건축가와는 좀 다르게 정파라는 의식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파라는 단어와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오우재에서 생각하는 건축의정파는 어떤 것인가요?

김: 저는 개인적으로, 건축하는 사람들 간의 모임에서도 건축에 대한 얘기를 절대로 하지 않아요. 대신에, 놀러 갔다 온 이야기나 최근 시사에 대한 이야기 또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와 같은 잡스러운 이야기들을 즐겨 합니다. 그런 제가 우연찮게 선배들의 모임에 딱 한번 갔었는데, 한자리에서 건축에 대한 이야기만 몇 시간 동안을 하시더라고요. 지치실 만도 한데 지치시지 않는 것을 경험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은 제가 하고 있는 것들이 “정파”라고 생각을 해왔는데, 알고 보니 “사파”라는 생각이 드는 때였어요. 이러한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건축의 정파”인가 보다 했지요.<웃음>약간 어렸을 때는 이런 상황들을 야유 했었을 것 같은데, 지금의 생각으로는 제가 갖지 못한 것을 그들은 가지고 계셨던 것이라 생각해요. 뿐만 아니라, 저 정도로 좋아하는 것에 집중을 하면 “건축도 잘 할 수 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통해서 약간의 반성을 했었어요. 그것이 2013년 일이었죠. 저희는 건축적인 것에 대해서 가볍게 시작을 했지만,그것의 결과물이 진지하게 완성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과정을 매우 중요시 할 수 밖에 없어요. 여기서 과정을 대하는 자세는, 독립하기 전에 경험을 했었던 이전 사무소들의 영향이 큽니다. 건축적인 것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굉장히 진지한 사무소들이였어요. 어쨌든, 저희들의 시작은 매우 가볍기 때문에 인터뷰의 질문이 될 수있는 것들 중에서 건축적인 컨셉을 묻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런 질문을 싫어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컨셉이 없었기 때문에 부끄럽기도 하고, 두 번째는 “그 컨셉을 알아서 뭐하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에 언급했던 것처럼 뭔가에 몰입되어서 재미있어 지는 것들이 건축에서 좋을 뿐 입니다. 도면을 그리고, 집을 짓고, 사람들을 만나고, 현장에서 티격태격 하고, 그러면서 집 하나씩 만들어 가는 것이 재미있어요. 그렇게 중요시 된 과정들을 통해서 완성한 것들이 우리 마음에 들면은 성공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박: 혹시 그렇게 즐겁게 작업이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있었나요?

김: 많지요.(웃음)

청산도 프로젝트

박: 저는 예전에 공공공사가 주관한 몇 건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진행했던 프로그램으로 어촌에 있는 작은 마을의 복지회관이 있었습니다. 설계 납품까지는 좋았는데, 공기업 내부적으로 설계자가 감리를 못하게 되어 있어 건물의 결과에 대해 관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저가 낙찰을 받은 시공사에 의해 변경 되는 일이 당연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오우재의 청산도 프로젝트 얘기를 듣고 나서 그곳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그렇게 오우재에서 진행한 청산도에 있는 건물들은 전부 둘러보고 왔습니다.

김: 지인들이 청산도에 가신다고 하면, 누누이 얘기하는 것이 있어요. 잠자는 곳으로는 저희가 설계한 곳이 비교적 낫고요. 건물 보다는 수려한 자연을 많이 보시라고 합니다.(웃음)

박: 공공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 듯 합니다. 오우재에서 처음 청산도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김: 2010년 3월에 김용미(금성건축사사무소)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는데, 첫 말씀이 “주경이 요새 일 없나?”였어요.그 당시 일이 없어서 손가락을 빨고 있었습니다.(웃음)저희는 일을 가릴 때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렸었고, 금성건축으로 연락을 해왔었던 청산도 프로젝트에 대한것을 선생님께서는 “우리 사무소의 규모에서는 쉽지 않은 일 같아서 소개시켜 주는 거니까 한번 해봐”하시더라고요. 저는 “네,알겠습니다” 했지요. 그렇게 통화를 마친 뒤에 군청과 미팅약속을 잡고 나서 하루 전날에 내려갔었습니다. 청산도에 도착한 뒤에 현장까지 걸어갔다가, 걸어서 되돌아 왔어요. 그 당시만 해도 버스는 없었는데, 택시는 딱 3대가 있었죠. 그렇지만 우리는 몰랐어요.(웃음)

박: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요? 차로 이동해도 한참 걸릴 정도로 거리가 꽤 있는곳인데.

김: 한나절 걸렸던 것 같아요. 정말 한참을 걸어서 다녔죠. 그런데, 오히려 걸어서 다녔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동과 서로 섬을 완전히 스캔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러고 나서,“여기 진짜 예쁘다”라는 것을 느끼고, 군청으로 갔어요. 계약을 할지 말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먼 길 놀러 온 셈치고 가벼운 맘으로 들어갔는데, 담당자들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이 오셨군요.” 하면서 부담스럽게 맞이해 주었어요. 그래서 무슨 일인지 들어봤더니……. 원래는 발주가 이미 나갔었는데, 설계된 것들이 심사에서 3번 정도가 부결되었던 거였어요.

박: 그렇게 부결된 안을 보셨나요? 그렇게 부결된 이유가 어떤 것 때문이었나요?

김: 계획안에 대한 수준이 낮았던 것 같아요. 청산도 선착장의 초입에 있는 「방문자센터」가 프로그램 이었습니다. 계속해서 통과되지 않는 기존의 계획안에 화가 났었던 군청의담당과장님이 새로운 사람을 추천해 줄 것을 컨설턴트에게 요구했었던 상황들 이었죠. 그렇게 제가 그곳에 등장하게 된 거였어요. 그리고 뭔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었던, 담당자들은 지금 당장에 계약을 하자는 거였어요. 그렇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을 선뜻 계약할 수는 없는 것이 저희만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방문자센터」에 대한 계획안을 진행하는 조건으로, 발주예정이였던 청산도의 「돌담체험시설」과 「향토역사문화전시관」 2건을 함께 계약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방문자센터」를 먼저 시작하게 되었죠. 결과적으로 우리는 동시에 3건에 대한 계획안을 진행시켜 나갔습니다. 심의위원회는 「슬로우시티」와 「가고싶은섬」 두 가지를 통과해야만 하는 만만치 않은 진행들 이었어요. 우리가 준비한 「방문자센터」 계획안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군청의 담당자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었어요. “이 건물을 제대로 지으려면,우리가감리를 무조건 해야 한다.”라고……. 일정금액 이상의 건물은 분리발주를 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방문자센터에 대한 계약은 하도급 관계로 계약이 되면서 우리가 주 계약자가 아닌 상황이 되었어요. 그래서 제안을 했었고, 결국에는 감리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박: 그 당시에 청산도가 「슬로우시티」 사업으로 국가에서 지정되어 있었나요?

김: 처음으로 지정된 사업이었어요. 청산도, 증도, 담양, 장흥 이렇게 4곳이 처음이었습니다.

박: 공공건축에서의 문제점을 미리 파악하고 그 부분을 가능하게 만들어 놓고 일을 시작 하셨던 것이었군요. 혹시 방문자센터처럼,「여행학교」도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김: 청산도에서설계 감리를 하고 있었을 때 일입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여행학교」는 다른 사람에게 설계가 이미 끝났을 뿐만 아니라,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어요. 하루는 담당자의 부탁으로, 공사 중 이었던 여행학교현장을 방문했었습니다. 1층의 공사는 어느정도 끝낸 상황이었고, 2층과 옥상 부분을 공사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2층의 천정 슬라브가 심하게 부식된 상태임을 뒤늦게 확인하고 나서 저에게 의견을 구하는 것이었죠.

박: 네 저도 그곳에서 하루 숙박을 했었습니다. 기존에 2층이 있던 건물인가요?

김: 맞아요. 기존에는 학교 건물이었고, 2층은 교실이었죠. 그 곳을 숙박시설로 공사하고 있었어요. 저는 구조안전진단을 받고 나서 상태가 심각하면 철거를 해야 한다고 무덤덤하게 말했어요. 그러자 담당자가 좀 더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상태가 안좋은 구조 부분들을 덜어낼건 덜어내고 보강할건 보강한 다음에 2층부분의 숙박시설은 가벼운 경량목구조를 사용해서 방갈로 형식으로 만드는 것은 어떻겠냐고 가볍게 말했어요. 그리고 덧붙여서한마디 했죠.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교실에 대한 추억들이 좋을리가 없다고……. (웃음) 그렇게 제 말을 듣고 있었던 담당자가 대안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했어요. 이유는 군수님한테 직접 보고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구조안전진단의 결과가 나오는 날짜로 군수보고회의가 열렸었고, 저는 담당자와 함께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예상했던 진단결과가 나온 상태에서 제가 간략히 준비한 대안으로 설계가 변경되었지요. 좀 당황스러웠습니다.(웃음)어쨌든 그래서「여행학교」를 시작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감리까지 맡겨주었어요.「방문자센터」와 동일한 상황이었거든요.

박: 오우재에서「여행학교」의 본 건물 뒷편에 있는 작업장과 입구의 관리사무소도 설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청산도 프로젝트에서 그렇게 여러 채를 할 수있었던 동기가 있었나요?

김: 「여행학교 작업장」이 있는 곳은 예전부터 마을단위 기업이 관리하는 된장을 만드는 좁은 장소였어요. 프로그램에 맞는 넓은 작업장이 필요했던 거죠. 그래서 기존에 농협창고와 함께 사용하던 일부분을 하나로 합치는 방식으로 진행했던 겁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여행학교 관리사」도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데, 여행학교의 중간 계획까지는 없었어요. 그때 당시에는 운동장 부분이 예산 문제로 방치된 상태였는데, 방치된 운동장을 군수님이 직접 확인하고는 잔디를 심기로 결정했었죠. 그러면서 관리사무소를 지을 예산이 옮겨갔던 겁니다. 일단 그렇게해서 잔디를 심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프로그램상 관리사무소가 꼭 필요했던 거였어요. 이런 상황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청산도 프로젝트사업이 진행됐던 거였어요. 시범사업단의 조사에 따르면, 「슬로우시티」와 「가고싶은섬」 사업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사례가 청산도 라고 하는데, 사실 청산도 프로젝트는 공무원 한 사람 덕분에 성공한 겁니다. 당시 담당자였던 주무관이 대단한 일을 한 거죠. 보통 지역발전 관련사업들을 들여다 보면, 시설에 대한 발주를 시작으로 물리적인 여건을 조성한 다음에 저걸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를 고민합니다. 그러면서 문제점들이 발견되기 시작하죠. 그런데 청산도 프로젝트에서는 주무관이 예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시설 발주를 늦추고, 소프트웨어를 먼저 발주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세웠어요. 그래서 주무관이 마을 주민들을 교육 시키면서 관광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그 프로그램에 필요한 시설들을 역으로 제안하는 상황이었어요. 그 계획에 맞춰서「방문자센터」를 짓고, 버려진 면사무소를「향토역사문화전시관」으로 활성화하는 등의 순서로 이어졌던 겁니다.

박: 애초부터 없었던 프로그램을 먼저만들고,그 프로그램에 맞춰서 필요한 것들을 찾아냈다는 거군요.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지 않은 것인데, 노하우가 있었네요. 저 역시 프로그램이 없으면 건물을 아무리 잘 지어 놓아도 소용없다고 생각합니다. 청산도는 적절한 장소마다 건물들이 잘 지어져 있었기 때문에 섬 전체적으로 많은 시너지가 나타났던 거군요.청산도 프로젝트는 그런 의미에서 정말 좋은 모범사례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좋은 프로그램과 발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진행한 담당 주무관이 있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은 많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