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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과 건축의 관계

박: 공공 프로젝트의 어려움도 있지만 또한 반대로 그것에 대한 성취감이나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공공 프로젝트를 학교 학생들과 주민들하고 진행 하면서 실제로 그 안에서 어떤 가치를 끄집어 내거나 아니면 가능성을 얻을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후지무라: 한가지는 공공프로젝트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그런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 조건이 된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를 오픈 하는 시선 말입니다. 그런 시선이 필요하게 된 것은 중요한 부분인데, 일본에서는 버블 경제였을 때 건축가들이 꽤 인기가 있어서 여러 다양한 건축을 만들었었습니다. 1990년쯤 버블경제였을 때 건축가들이 인기가 있어 많은 건축물들을 지었지만 그 후에 건축가들이 대중들로부터 미움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버블경제였을 때 건축가들이 만든 건물들이 이상한 것들이 많았고, 너무 지나치게 개성이 넘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성을 표현한 것 이라던지 보편적인 것과 다른 것을 만들거나 하는 것이 일본에서 상당히 비판을 받아서 지금의 건축가들은 사회의 신뢰를 되찾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단지 그것을 하고 있습니다.

박: 그렇군요. 지금 이야기 하신 내용은 한국의 지금 현재 젊은 건축가들에게는 좋은 내용으로 전달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경기가 좋거나 나쁘거나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는 것은 건축의 고립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사회에서 건축이 적절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관심 가지고 적극적으로 좋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공감하고 있습니다.

박: 제가 느끼기에는 후지무라씨가 일본 건축계에서 다양한 발언과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함께 이야기를 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 후지무라씨의 생각들이 건축계 내에서 소통의 방식으로 그것이 어떤 역할을 하기를 바라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후지무라: 건축가의 역할을 바꾸고 싶다고 할까? 이전에 가지고 있던 건축가의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건축가의 역할과는 다르다거나 지금까지 건축가의 이미지와는 다르다는 것을 사회에 전하려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건축가 자신의 의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995년이라고 하는 전환기를 강조해 1990년도까지의 버블이었을 때의 건축가와 지금의 건축가가 다르다는 것을 우선 건축가들과 공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유학

박: 전시 때 일본 다섯 팀과 한국 다섯 팀이 함께 전시를 하게 되었는데 전시를 한 팀들을 보면 공교롭게도 한국에 다섯 팀 중에 저희 팀 빼고 나머지 네 팀은 유학을 갔다 온 팀들이고 일본은 반대로 후지무라씨만 유학을 갔다 오고 나머지 네 팀은 유학을 갔다 오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한국의 젊은 건축가들하고 다른 관심이나 성향들이 나타난다고 생각이 듭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일본의 젊은 건축가들이 해외로 유학을 많이 안가는 분위기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지무라씨는 유학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유학 갔다 와서는 자신에게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후지무라: 그러네요. 제 시대 직전까지 유학을 가는 사람들이 많았었는데 네덜란드라든지 스위스의 건축가가 일본에서 꽤 인기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특히 네덜란드의 건축에 흥미가 있어서 그곳으로 유학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직감적으로 말하면 우리들은 개발의 시대에 태어나 자랐는데 1980년도가 한국에서도 마찮가지이지만 일본에서도 건설이나 개발이 번성했었죠. 그러던 것이 1995년 전부 멈춰버린 것이었습니다. 저는 도시 개발에 좀 더 관계하고 싶었는데 일본은 그런 일들이 없어졌고 1990년도의 네덜란드에는 건축가가 개발에 참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어서 그것을 보고 싶어 갔습니다. 네덜란드에 갔더니 그때 마침 네덜란드에도 버블이 터지기 시작해서 뭐랄까 저는 개발 붐을 뒤쫓아 가지도 못하고 환영처럼 사라져버렸습니다. 네덜란드가 꽤 재미있었던 부분은 여러 사람의 이해를 받기 위해서 설명 방법에 꽤 신경을 썼었다는 부분입니다. 그건 좀 전의 이야기와 연결됩니다만 일반 사회에 대해서 건축가가 프레젠테이션 한다고 하는 것, 네덜란드의 합리주의 같은 것이 건축 설계에 연결되어있는 것이 지금 일본의 상황과 상당이 비슷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하고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박: 오늘 하루 종일 동경 시내를 을 돌아다녔는데 프로듀서라고 해야 하나 스타일리스트 같은 유명한 분들이 기획 하면서 새로운 장소를 만들어 낸 곳들을 갔었습니다. 오모테산도 옆에 있는 비어있는 땅에 아주 작은 이동 가능한 건물들을 여러개 갔다 놓고 약간 도심속 마을처럼 다양한 것들을 팔고 있었던 곳이 있었습니다. 내일 가 보려고 하는 곳은 ‘요요기 빌리지’라고 하는 곳인데 비슷하게 작은 컨테이너 공간들을 모아 작은 마을을 만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쨌든 그런 것들이 사실 사람들이 혼자, 따로따로가 아니라 일본에서 이전에 그런 재해들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여러 사람들이 같이 무엇인가를 하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느껴 졌습니다.

후지무라: 이것은 그러니까 좀 전에 말한 커뮤니티, 멘탈리티라고 할까 이런 커뮤니티 같은 것이 자연 재해가 일어난 것도 있고 해서 꽤 지금 유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것이 단지 일종의 유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유행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좀 더 확대해서 본다면 일반인의 주거의 형식에 있어서 함께 해야한다, 함께 사는것이 좋다라는 분위기와 연결되지 않을까요? 그것이 이제 현실적 제안으로 나루세 이노쿠마의 쉐어하우스같은 주거 형식도 나오는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후지무라: 나루세 이노쿠마와는 쉐어하우스의 스타죠. 코뮤니티 멘탈리티의 아이돌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웃음)

박: 나루세 이노쿠마와 같이 어떤 모습으로 건축을 하는가는 어떤 면에서는 우연도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의식적으로 자신만의 건축을 생각하고 작업한다고 생각됩니다. 전시에서도 그런 점이 느껴졌지만 후지무라씨는 왜 건축을 하는가요? 그리고 어떤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지요?

후지무라: 건축은 기본적으로 정치라고 생각합니다만, 정치라고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유에 관계하는 것들을 의사 결정하는 의미로의 정치라고 생각하는데 건축에서의 좋은 예는 고베시 시장이라 생각됩니다. 당시의 고베시의 문제는 로코산(六甲山)이라는 곳에 1960년 원래부터 수해가 많았고 항구가 협소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산에서부터 바다로 터널을 만들어 산을 깎아 바다를 메워 고베시를 기획, 개발 하셨죠. 그분은 고베의 시장이지만 원래는 토목 엔지니어이셨죠. 엔지니어링으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과 같은 그런 직업에 동경해서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정치라고 하는 것이 상당히 나쁜 이미지라 한국과 비교하면 이명박 대통령 같이 자신을 어필 하기 위해서 건축을 사용하는 것이 되어버렸는데, 본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든지 사람과 사람과의 연결을 만들고자 건축을 만드는 것이 본래의 기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사회에 다시 돌리고 싶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 저는 개인적으로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더 건축을 사회적인 관점에서 접근을 하고 있고 한국의 경우에는 훨씬 개인적 관점을 둔 자신 내의 동기로 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라는 그런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어째든 저도 개인적으로 계속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또는 사회 속에서의 시스템의 관계, 이런 부분들에 계속 관심을 가져 앞으로 같이 이야기 해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 의미의 변곡점

후지무라: 아마 일본의 경우도 개인의 감각을 어떻게 사회로 연결할까라는 의식은 원래부터 강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이 역시 변화된 것이 1995년 정도부터 입니다. 소가베씨는 미칸구미(みかんぐみ)팀으로 1995년에 시작하신 분이신데 일본의 사회의 분위기가 바뀐 뒤의 시대의 분이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건축을 만들고 싶다라는 의식이 강하신분이십니다. 그래서 젊은 세대의 건축가들을 이번에도 특별히 모아서 전시회를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 의미로서 한국도 그런 사람들이 모였다라는 것이 이번의 전시회의 컨셉트가 상당히 공통점이 있던 부분이지 않을까 합니다.

박: 사실은 한국에서는 소가베씨에 대해서 거의 모릅니다. 이전에 소가베씨가 관심을 가졌던 사회적인 것들이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후지무라: 네. 소가베씨는 지금 네명으로 건축을 하고 계신데 4명이 건축을 함께 하면서 논문을 쓰셨는데 “비작가성의 시대에「非作家性の時代に」”라는 글 입니다. 버블인 때처럼 ‘개인의 이름을 제시하면서 화려한 작품을 만들지 말고 좀 더 일상 속에서 보통의 건물을 만든다’ 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소가베씨 그룹은 당시에 꽤 비판을 받았었습니다. 소가베씨는 일반인으로 지지를 받으며 사회로부터 지지를 받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가에게는 비판을 받았고, 기본적으로 건축가는 그런 주장을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사회적으로 이해하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소가베팀은 최근 그런 주장을 하고 있지 않지만 저는 그것이 그 당시의 시대에서는 상당히 의미가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이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박: 그렇군요. 그 당시의 시대 상황을 본다면 다른 건축가들과는 상당히 다른 행보와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지금 말씀하셨다시피 소가베씨가 건축가들에게는 비판을 받거나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후지무라: 건축가와 특별히 이토 도요상, 안도 타타오상 시대의 이후에 사회로부터 자립해야만 한다라는 생각이 강했었습니다. 사회에 경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관점에서 비(非)작가라고 하는 것처럼 보통의 건물 만드는 것을 사회에 대해서 비판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라 생각해서 비판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박: 그렇군요. 그렇지만 비작가성의 시대에 나온 이야기처럼 작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과도한 표현력에 따른 현실적 이해의 부족 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전통이나 한국성에 대한 관심으로 4.3그룹이라는 그룹이 활동한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쩌면 정부 주도의 큰 프로젝트들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큰 공공프로젝트들은 외국건축가와 정치적 입장에서 접근하는 경우도 이어지고, 공기업인 LH공사에서는 공동주거에 대한 새로운 제안들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면에서는 일본은 정부 주도 보다도 도심지 사업과 관련된 부분은 민간에서 더 과감하게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후지무라: 문제의식이 닮은 것은 잘 알았습니다만, 일본의 어느 쪽에서는 서울을 보고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논조가 많았습니다. 2000년도에 이명박씨가 청계천으로 성공했었고 자하 하디드 끌어 들인다는지, 상당히 건축을 중심으로 해서 정치를 해온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버블 이후에 정치가가 건축을 말하는 것은 금기였었습니다. 일본은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건축을 완전히 이용하지 않고 사회를 생각해나가는 글로벌제이션을 놓치는 것이 아닌가라는 논조가 강했습니다. 이번에 한국에 가서 알게 된 것은 이명박 대통령 이후부터 정치적인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찬반 여론으로 나뉘고 지금 차이가 벌어진 사회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커뮤니티 라던지 이웃 이라던지 그런 것에 관해 생각하는 부분이 많은 듯했습니다 일본과 너무나도 닮은 상황이 되어버려 공통된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박: 말씀하신 한국에서의 청계천 공사와 오세훈 시장 때 진행되었던 한강르네상스, DDP 등은 한때 많은 비판을 받았었습니다. 외국 스타 건축가에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동대문 운동장 대지에 그렇게 과하게 세금을 투입한 건물이 과연 적절한 판단인가에 대한 의문과 비판이 있었습니다.

후지무라: 자하 하디드씨가 비판 받는 구도가 버블 뒤의 일본의 건축가의 비판과 상당히 닮아있습니다. 다시 말해 기획이 나쁘다보다 자하 하디드씨에게 좀 더 콘텍스트를 읽을 수 있도록 의뢰할 때 요구가 없었나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클라이언트가 아이콘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건축가에게 했다면 건축가만이 그런 책임감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버블의 뒤의 일본 건축가도 조금 같은 상황 이어서 건축가가 자신만의 표현을 하고 있다라고 듣거나 또는 주변을 보지 않았다라고 하는 비판을 받게 될까 그것에 각별히 의식하고 있습니다.

박: 일본에서의 버블 이후의 건축에 대해 여러가지 변화가 있어왔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그것은 건축에서도 버블 상황이 그대로 전달되었고 경제 버블이 사라지면서 건축에서도 그와 같은 버블이 비판받아 왔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지금은 일본에서 좀 더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관심을 가지고 건축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도 느껴집니다. 다시 한번 긴 시간동안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다음 기회에 더 진지한 고민 교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인터뷰어: 박창현
통역: 이영화
날짜: 2012년 12월 21일

참고로 위 내용에 나오는 ‘비작가성의시대에’ 원문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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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작가성(非作家性)의 시대에 (글: 미칸구미)

이번에 동시에 발표하는 두 주택은 미칸구미에서 처음으로 다룬 주택 설계이다. 우리는 다섯 명의 파트너가 공동으로 설계를 하고 있고, 주택 설계에서도 이 방법은 기본적으로 변함없다. 대지 조사에서 기본설계를 정리하는 단계까지는 파트너 모두가 함께 의논하며 설계를 진행한다.

보통 감각

공동으로 설계를 하는 동안, 점차 다섯 명에게 공통되는 어떤 지향성이 분명해졌다. 한마디로 말해서 보통 감각으로 주택을 짓고 싶다는 생각이다. 주택을 설계하면서,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제안을 한다던가, 개성적인 형태를 도입하는 등의 독특성(uniqueness)이 없으면 건축가로서의 존재의식이 없다는 식의 사고는 우리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독특성이 과격해졌을 때 나타나는 기이한(eccentric) 작가성에 위화감을 느낀다. 그러므로 주택에 작가성이 나타나는 것을 조심스럽게 피하고, 사전에 탈색된 작품을 만들려고 고민한다.
작가성, 즉 건축가로서의 과잉 표현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미칸구미의 공통된 지향성이고, 이는 보통 감각으로 만든다는 것을 말한다. 보통 감각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취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매개변수(parameter)의 풍부화’이다.

매개변수의 풍부화

단 한 가족만을 위한 주택이라고는 하지만, 주택을 둘러싼 오늘날의 상황은 꽤 복잡하여 설계자가 고려해야 할 문제는 다종다양하다. 주택에 필요한 기능성, 사회성, 경제성, 혹은 건축주의 개성 등에서 도출되는 잡다한 조건 하나하나를 설계에서의 매개변수라 한다면, 우리가 이상적이라 여기는 방법은 설계 프로세스에서 다루는 매개변수를 풍부화하는 것이다. 가능한 많은 매개변수를 모으고, 그 변수들은 우선순위를 매기지 않고 최대한 등가로 다루려고 한다. 예컨대 이번의 두 주택설계에서 다룬 매개변수 가운데 배치계획에 관한 것만 해도 ‘거리, 이웃, 프라이버시, 채광, 통풍, 소음, 조망, 대지의 경사, 적설량, 건물의 외관, 수목, 수종, 분재, 어프로치, 주차장, 아웃도어 요리, 창고, 배관, 비계, 설비 기기, 태양열 패널, 지반’ 등의 조건을 들 수 있고, 이것들은 동등한 무게로 설계에 반영되었다.
다만, 많은 매개변수를 등가로 다룬다고 해서 무질서하게 늘어놓거나 혹은 의식적으로 ‘풍부함’을 표현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이 매개변수를 다루는 프로세스이고, 결과적으로 그러한 의도가 가시화됐는지 아닌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것보다도 되도록이면 아무 것도 아닌 듯한 인상을 가지도록 전체를 통합할 수 있으면 된다.

건축주

거주자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설계 시작 시점에서 스태프를 포함한 전원이 건축주와 상견례를 한다. 건축주와 협의하는 초기에는 건축주의 희망사항을 듣는데, 그 때는 설계자라기보다는 철저히 인터뷰어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듣는다.
기능적인 요구에서 막연한 이미지까지, 가능한 건축주의 많은 생각을 묻고 들은 후 개개의 바람을 다른 전제조건과 함께 매개변수로써 설계에 반영한다. 또한 어느 정도 기본구상안이 정해진 단계에서 건축주와 함께 토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건축주가 품고 있는 이미지와 우리 생각 사이의 거리를 재고 건축주의 바람을 가능한 정확하게 매개변수로 삼기 위해서이다.

복잡함의 수용

건축주의 인터뷰나 매개변수의 풍부화라는 말에서 사용자 본위(user friendly)의 친절 설계를 지향하는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분명 사용자인 클라이언트의 요구도 매개변수이므로 필연적으로 친절 설계가 된다. 하지만 우리의 의도는 다른 데 있다.
본잡지 97년 12월호 편집후기에서 mt 씨가 말한 ‘친절 설계라는 이름 하에 안이한 타협을 계속하면, 교각살우(矯角殺牛)(소의 뿔을 바로잡으려다가 소를 죽인다는 뜻으로, 잘못된 점을 고치려다가 그 방법이나 정도가 지나쳐 오히려 일을 그르침)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그리고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가 직접 전해지는’ 것이나 ‘개념을 어떻게 실현해 갈 것인가’를 중시하는 가치관은, 지금의 우리로서는 이해는 되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는 않는다. 범위를 압축시킨 조건을 예리한 개념으로, 마치 날이 잘 드는 칼로 단번에 두 동강 내듯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명쾌한 건축을 낳는다. 전후 주택건축사를 돌아보면 그러한 이해하기 쉬운 작품이 기라성 같이 늘어서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만큼 복잡함이 늘어난 현대사회에서 그런 단순명쾌한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취해야 할 길은 복잡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균형을 잃지 않도록 매사를 판단해 가는 것이다. 매개변수를 풍부화하는 것은 복잡한 시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이 시대에 어울리는 설계방법을 모색하는 것과 연결된다.
나아가 한 주택을 둘러싼 상황은 시간과 더불어 점점 변화해 가고 매개변수를 늘리는 것은 곧, 완성된 건물에 건물이 설계된 시대를 짙게 반영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해하기 어려움과 역동주의(dynamism)

우리가 보통 잡지에서 보는 건축은 앞서 말한 mt 씨가 절찬하는 헤르조그 & 드 므롱(Herzog & de Meuron) 스타일에 개념도 명백하고 시선을 끄는 작품이 적지 않다. 그런데 미칸구미의 주택은, 가령 전시회에 방문한 지인 건축가들로부터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거나 ‘평면이 외관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단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설계한 주택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눈에 띄는 표현이 없고, 문제를 단순화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풍부함’을 어필하는 것도 아니라서 그런 비판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우리에게 그런 의식적인 이해하기 어려움은 자연스럽고 친밀한 존재이다.
한편, 우리 다섯 사람이 설계를 하고 있으면 기본적인 방향성은 공통되어 있다지만 다양한 국면에서 개개인의 어긋남이 나타난다. 이 개인차가 디자인을 전개시키는 에너지의 근원 같은 것으로, 이것이 없으면 그룹에서 활동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개인차에 의한 어긋남이 설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꽤 구불구불한 과정을 거치면서 엑기스는 전진해 간다. 이러한 예측불가능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하기 어려움이 미칸구미의 설계 역동주의라고 생각한다.

비작가성의 시대의 방법론을 찾아서

과잉 표현을 억제하는 것도, 매개변수를 풍부화하는 것도, 주택에 작가성이라는 자아를 가져가고 싶지 않다는 한 뿌리에서 나온다. 다시 말하면 우리 다섯이 동등 파트너십으로 설계를 하고 있는 것도 개인의 자아의 표출보다는 바로 시야 확장의 가능성을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우리는 현대에서의 작가성을 표명하는 일에 리얼리티(현실성)를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세대론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작가성을 부정하거나 혹은 중시하지 않는 일군의 건축가가 젊은 세대에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1997년 도쿄에서 개최된 30대 건축가 회의 & 전시(30×100architects 전)에 미칸구미도 참가했지만, 이 전시를 본 어느 윗세대 건축가가 ‘전부 다 같아 보인다’는 감상을 피력했다고 한다. 분명 개성적이라기보다는 동시대적이고자 하는 자세가 적잖이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건축 상황을 비작가성의 시대라 불러야 할지 어떨지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두 주택 설계를 통해 우리가 해 온 것은 비작가성 시대의 방법론을 찾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참고>
미칸구미(MIKAN) - 현재는 4인 파트너 (가모 기와코 加茂紀和子, 소가베 마사시 曽我部昌史, 다케우치 마사요시 竹内昌義, Manuel TARDITS 프랑스 출신), 사무소 이름의 유래는 멤버의 딸이 다니고 있던 보육원 반 이름. 감귤 반

인터뷰어: 박창현
정리: 박창현
날짜: 2012년 12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