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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원_aoa

친밀한 낮설음, 논리의 감성을 구축해 나가는.

1974출생. 97년 단국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경기대 건축전문 대학원에 들어갔다. 2003년 대학원 졸업 후 JINA Architects에서 11년간 실무를 쌓았으며, SK플래닛 판교사옥과 외대 용인캠퍼스 신본관의 디자인을 총괄했다, 2013년에 aoa architects로 독립하였고, 2009년부터 단국대학교 건축학과에 출강중이다.

STUDIO Teaching

박: 오랫동안 첫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일을 하면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에 어떤 의미를 두고 있으며 출강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서: 언젠가부터 학생들을 가르쳐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왜 그랬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 때는 큰 회사에 다니던 때라 제 작업이라 할 만한 일을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오히려 더 깨어 있으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건축 일을 하는 회사원’이 될 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건축에 관한 저만의 생각과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쌓여 가면서 그것들을 실험 혹은 확인 해보고자 하는 욕망이 자연스럽게 학교를 생각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그러던 차에 금융위기가 와 진행하던 프로젝트도 홀드가 되었고 거의 동시에 학교에서 우연한 기회가 왔습니다. 그날로 바로 달려가서 코디네이터 교수님을 뵙고 술 마시면서 이야기 했죠. 잘 할 자신이 있으니 무조건 맡겨달라고……. 그렇게 학교와는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박: 회사를 다니면서부터 가르치는데 지금까지 몇 년째 가르치고 있는가요?

서: 올해로 6년째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대한 의미라면 글쎄요……. 사실 학교에 처음 나갈 때는 학생들에게 많은 영감도 얻고 그러길 바랬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런 측면은 거의 얻은 게 없는 것 같아요. 생각보다 학생들은 창의적이지도 않고, 창의적인 것은 둘째치고 라도 너무 기본을 모른 채 튀려고만 하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요즘 저는 어느 정도 훈육displine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예전 보자르 학교식의 마스터 클라스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뭐든지 다 알아서 하라는 방임도 아니라고 봐요. 이야기 하자면 길지만 하여간 지금은 그 적절한 선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설계수업은 결국 제 자신의 생각과 태도를 확인해 보는 과정입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선생 본인이 결코 애매한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이건 일종의 교수법에 관한 이야기일 수 있어요. 최소한 선생으로서의 자신 만큼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 그것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명확히 정의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틀렸다면 선생도 계속 수정해나가면서 재정의 해야겠죠. 그런 과정은 끊임없이 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아주 심지어 기본적인 질문을 매 학기 다시 제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건축이 뭔지……공간이 뭔지…… 건축가의 역할은 뭔지…… 계속 생각을 정리하게 되죠. 재미있는 것은 저도 계속 바뀌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출강의 또 하나의 이유는 경제적인 부분도 무시할 순 없습니다.

박: 유명한 건축가들이 바쁨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은 각자가 가진 철학 때문 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가르치기 위해 자신에게 물어보게 되고 그것이 생각의 정리와 연결된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내용을 중심으로 가르치고 있나요?

서: 태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저의 건축 철학이라던가 개념으로 학생들을 계몽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학생들이 판단하는 것이죠. 설계 수업은 제가 평소 관심을 가지고 확인해보고 싶었던 부분을 실험합니다. 최근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건축 자체로부터 발생되는 건축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건축 그 자체에 집중한 건축입니다. 요즘 건축은 사회학, 인문학 등을 이야기하는 것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고 봅니다. 건축가는 사회학자 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인문학자, 심지어는 목사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누가 봐도 건축가인 본인 조차도 정작 스스로가 건축가로 한정하여 정의되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건축가가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짐을 스스로 과도하게 떠안고 힘들어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축,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은 일종의 이런 현상들에 대한 반감의 측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저는 건축을 사회적인 윤리보다는 주관적이고 내적인 자아의 표출로 건축을 보고 있습니다. 일례로 이번 학기 작업은 서촌 공동주택 프로젝트였는데,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보다는 공동주택의 중심을 길게 가로지르는 공용계단의 위치에 따른 주거 배치가 만들어 내는 평면이라든가 유닛 내부의 계단이 건물 전체의 구조와 입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 등의 건축의 실제적 문법 혹은 이상적인 형식에 대한 부분을 주로 실험하였습니다. 물론 사회적인 문제 등을 완전히 외면하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레벨에서 사회성보다 주거 각층 복도에 놓인 자전거 보관대 하나가 더 사회적인 부분을 충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한 학기 내내 심각한 이야기만 하다가 정작 유닛 평면 없는 매스 배치 모델로 끝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죠. 최소한, 맞든 틀리든 공동주택 프로젝트면 주거 평면의 벽하나를 가지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하튼 저는 지난 2-3년 전부터 건축이 가지는 구법과 형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런 것들을 학생들과 같이 실험하고 있습니다.

박: 저도 사실 사무실 일과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분리해서 진행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두 일이 관계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사무실에서 실험을 해야 하는 기본적인 구법의 스터디를 학생들과 직접 확인해보려 합니다. 기본적인 부분들, 건축의 어휘와 구법에 관한 것들을 1학년들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저는 미학적, 역사적, 철학적, 사회학적인 것들로부터 오는 건축을 가르치는 사람 그리고 건축의 원론적인 구법과 어휘를 가르치는 사람 둘 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재원씨가 지금 관심 가지고 있는, 학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어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 듣고 싶습니다.

서: 한가지 예를 든다면 ‘기둥’이라는 요소element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둥은 건축을 대표하는 메인 부재이죠. 건축을 가장 건축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요소가 기둥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주두에 온갖 장식을 하고 한 시대를 대표했던 중요한 요소였는데, 현대로 오면서 기둥은 단지 중력을 전달하는 매개 역할로만 여겨지죠. 도리어 성가신 것이라 없애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중력에 반反하고 싶은 욕망이 있어, 기둥은 틀어지고 사라집니다. 모더니즘 이후에 기중은 점점 얇아지고 기술의 발전이 이기나 중력이 이기나 경연하는 듯 뽐내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요즘 저는 오히려 건축을 가장 건축답게 만드는 그 기둥에 대한 찬양으로 일종의 오마주homage를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면 패러디parody일 수도 있습니다. 기둥과 슬래브가 접합되는 형식에 대한 문제, 의도적으로 축열에서 어긋난 기둥과 공간의 스케일에 맞지 않는 기둥의 크기, 위치 등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든다면 계단도 있는데 계단은 원래 슬래브와 슬래브를 수직적으로 이어주는 매개지만 오히려 슬래브와 떨어져있다거나 매달려 있는 상황, 계단이 오히려 공간의 한가운데서 구조의 역할뿐 아니라 공간을 구분하는 시스템으로서의 평면, 그런 것들에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러한 것들은 윤리적이거나 사회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미학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겠죠.

기이함을 만드는 Element

박: 설명한 내용에서 사용된 단어들은 어쩔 수 없이 서구적인 어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건축이라는 단어 자체가 서구에서 왔고, 토대 자체가 서양의 건축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생각은 그런 서구의 틀 안에서 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렘 쿨하스rem koolhaas가 말한 ‘요소element들을 누가 어떻게 정했느냐, 왜 그 단어를 써서 우리가 우리 것으로 해석해서 쓰는가?’ 그 시작점에 대해 의문이 듭니다. 그것은 또 한편으로 대응할 수 있는 태도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받아들이고 그 서양의 룰(툴 과 틀) 안에서 내 것을 이야기 한다는 태도와 우리 것으로부터 끄집어내고 그 이야기를 한다는 태도로 나뉠 것 같습니다. 서재원씨는 전자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후자를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은 아닌가요?
서: 건축은 자의적arbitrary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소element를 말씀하셨는데 요소들을 쪼개는 방법도 많습니다. 어디서부터 요소로 볼 것인가 하는 것도 본인의 주관적인 설정이죠. 물론 우리는 꼬르뷔제le corbusier의 돔-이노dom-ino 시스템 이후로 슬래브, 기둥, 계단 등으로 요소를 나누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물성으로 요소를 나눌 수 도 있고, 계단만도 더 세부적인 요소로 나눌 수도 있습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도 렘rem koohaas이 보여준 요소도 생각보다 훨씬 세분화되고 다른 방법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저는 이 모두 작가의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정해진 요소라는 것은 없죠. 제가 보고자 하는 부분은 요소를 어떻게 분류할 것이냐의 문제는 아니고, 요소 자체와 그 요소들를 엮는 일종의 문법grammar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 서양의 문법grammar를 받아들여서 그것을 가지고 작업을 하겠다는 것입니까?

서: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계단, 슬라브, 기둥 등의 요소가 꼭 서양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그 부분은 이미 지역을 떠나서 너무나 보편적인 형식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 의도적으로 반감을 가지고 앞서 말씀하신 우리 것으로부터 끄집어내는 태도, 예를 들면 한국적인 고유의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거나 하는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은요. 나중에 나이가 더 들면 모르겠지만요. 솔직히 말하면 아직 한국의 전통건축을 보면서 대단한 감동을 받고 우리 것이 정말 다른 문화보다 우월하다고 몸소 느낀 적도 거의 없고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저는 약간 다른 방향에서 순전히 사적인 취향으로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낸 결과들에 관심을 가지고는 있긴 합니다. 한국적 삶과 일본의 형식이 혼재된 적산가옥이라든가 한국의 문화와 서양의 형식이 혼재된 절충 양식의 근대 유산들, 그리고 요즘에는 60-70년대 지어진 집 장수들의 집들에 호기심이 있습니다.

박: 60-70년대의 한국의 집 장수들? 아주 흥미로운 관점이네요. 집 장수들의 무엇에 관심이 있습니까?

서: 딱히 집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소위 ‘디자인’이 안된 그때 당시의 건물들이 만들어낸 형태와 구조의 솔직함, 전혀 작가적이지 않은 태도에서 미학적으로 집착하지 않은 어설픈 디자인과 디테일들이 만들어내는 묘한 어색함에 관심이 갑니다. 슬라브는 두껍고 벽돌은 커튼월 방식이 아닌 슬래브 위에 얹히는 것이 당연하고, 그러다 보니 슬래브 단면은 노출되고 외부 캔틸리버cantilever 계단에는 둔탁한 보가 따라 나오는 것이 당연하고, 그래도 디자인 요소는 좀 가미해야 할 것 같으니 만들어 낸 일명 뻐꾸기 창, 그런 것들이 오히려 재미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당시에는 여러 상황들이 적당히 만들어낸 그냥 집일 텐데 사실 지금 보니 흥미로운 부분이 있는 거긴 하죠. 하지만 솔직히 요즘 지어지는 가식투성이의 숨막히는 조악한 디자인의 건물 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박: 맞아요! 그 당시에는 돈이 없고 싼 재료가 벽돌이었고, 게다가 인건비도 그다지 비싸지 않았기 때문에 조적이 많이 사용 되었지요. 그런데 그 당시의 재료로서의 벽돌은 그 당시의 이미지 때문에 전면 파사드에 돌을 사용하고 옆과 뒤의 보이지 않는 입면에는 어김없이 사용되어 숨기고 싶은 재료였습니다. 비단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라고 보여지고 이탈리아에서 아주 보편적으로 이분법적인 입면 재료 사용이 보편화 되어 있었지요.

서: 그건 지금도 그래요. 재료의 문제를 떠나서 일반적인 디자인 수법인 거죠. 서울시청도 그렇고, 광화문 앞에 있는 트윈 트리도 그렇고.(웃음) 하여간 지금 제가 이야기 하고 있는 부분은 일종의 작가적 관점으로서의 비非작가성 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디자인’이 넘쳐나는 것에 일종의 반反감이 있어요. 보가 필요하면 보를 만들고, 기둥이 필요한 곳에 기둥을 세우고, 벽이 있어야 하는 곳에는 벽을 만드는 것이 솔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의도적으로 보를 없애고, 무리하면서까지 기둥을 없애고 그러는데, 오히려 그런 것을 역으로 이용할 수는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박: 앞에 말한 기둥의 무엇은 시각적인 구현, 표현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말하는 한국의 70년대 건축은 기능위주의 상황에 의해 만들어진 자연스러움으로 접근은 좀 다르다고 느껴져 그 접점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상반된 이야기와도 같아 보입니다.

서: 기둥에 대해 말한 부분은 질문이 교육에서 어떠한 것을 위주로 가르치냐는 질문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건축적 문법의 변형을 기둥을 예를 들어 설명한 것입니다.

박: 그렇다면 교육의 입장과 개인적인 작업의 입장이 다른 것 아닌가요?

서: 전혀 안 이어진다고 할 수는 없어요. 이미 말씀 드렸지만 두 가지 모두는 기본적인 요소 혹은 문법에 충실합니다. 그리고 그런 문법을 약간씩 어기며 만들어내는 변형들, 혹은 자연스럽지만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무언가, 결국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묘한 느낌들이 있습니다. 작가적 태도와 과정으로 보면 두 가지가 상반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제가 흥미롭게 보는 부분은 결과적 상황 혹은 분위기? 그런 것 입니다. 대단히 일상적이고 당연해 보이지만 뭔가 이상하고 어딘가 어색한 것? 그런 것이겠죠.

박: 당시의 한국 상황은 재료를 다루는 기술도, 구법의 다양성도 부족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상황인데 지금은 그때의 현실과는 전혀 다르지 않은가요? 그 관심을 가지고 지금 어떻게 하려는 건지 궁금합니다.

서: 그것들을 그대로 따라 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공간 한 가운데 박힌 거대한 사선 기둥이 애매한 상태를 만들어냈지만 그것이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상태, 현실적이지도 그렇다고 비현실적이지도 않은 초현실적 상태라고나 할까요. 이러한 것이 만들어 내는 다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 그런 기이한 것을 만들어내는 방법이 한편으로 과장된 몸짓 혹은 불필요한 장식처럼 보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건물이 가지는 잠재력을 끄집어내면서 설명할 수 있는 출발점은 될 수 있지만, 예전에 상황이라면 자연스럽게 나오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진 상태에서 그 잠재력의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상황들을 어떻게 끄집어 낼 수 있을까요?

서: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진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용도, 주변의 컨텍스트context 일 수 있습니다. 여기 지난 가을 학기 학교에서 학생들이 했던 작업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시면 좀 더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광화문 미대사관의 리노베이션renovation 프로젝트 였는데 이 학생의 작업은 호텔입니다. 기존 건물이 가진 모듈과 층고를 그대로 이용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호텔을 선정하고 건물의 장소성과 높이를 고려했을 때 옥상에 수영장을 증축하는 것으로 초기 개념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무거운 하중의 수영장을 기존 건물에 태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고 따라서 수영장 구조와 원래 건물구조는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도록 하고 거대한 기둥으로 서있는 고가도로의 구조에서 영감을 얻어 마치 고가도로 구조가 건물 중앙에 삽입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구조적으로 요구되는 기둥 크기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으나 의도적으로 기둥 주변으로 슬래브를 도려내고 세장비를 더 크게 하여 기둥 단면을 키운 후 다시 십자형으로 기둥을 변형한 것 입니다. 사진에 보여지는 공간은 호텔 엘리베이터 홀 부분에 과도하게 큰 기둥이 박혀있는 모습입니다. 결국 이러한 결과는 용도와 컨텍스트의 해석에 의해 촉발된 것입니다. 또 다른 학생의 작업은 광화문 광장에 거대한 그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건물의 일층을 기둥 조차 없이 중앙 코어 만 남기고 비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1층 코어 벽은 비현실적으로 두꺼운 상태가 되고 2층 전부는 거의 한 층을 차지하는 보beam 춤으로 꽉 차게 되는데 단면에서 보면 보는 일종의 벽의 형식을 띄게 되나 바닥에서는 떠 있는, 마치 무거운 벽이 매달려 있는 애매한 상태를 자아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입면에서는 기존에 있던 콘크리트 루버를 이용해 외벽면이 점점 앞으로 나오면서 깊이감을 달리하고 상부로 올라가면서 오프닝opening의 형상과 배경figure & ground을 뒤바꿔 거대한 창은 문의 크기로 변화되지만 실제로는 문이 아닌 애매한 상태를 만들어 낸 것 입니다.